짧아진 해, 이른 새벽 웅웅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 이전과는 분명 다른 하늘에 가을임을 절실히 체감하는 9월, 재밌게도 극장가는 소설이 원작인 영화로 포문을 열었지요. 스티븐 킹의 ‘IT’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필자의 이달 추천작은 소설원작인 영화들에서 골라봤습니다.

1. 스티븐 킹의 <그린마일>

서머셋 몸의 <페인티드 베일>

스티븐 킹에게 갖는 가장 큰 선입견은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것인데 명실상부 ‘스토리의 제왕’, ‘타고난 이야기꾼’이 정확할 것입니다. 이미 머릿속엔 시작부터 엔딩까지 모든 그림이 다 저장돼 있어 ‘오늘은 어떤 걸로 할까, 이게 좋겠군’ 끄집어 내 술술 페이지를 채워가는 능력이 있단 말이지요. 작품 대부분이 여러 감독들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주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태어나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가 딱 스티븐 킹일 것입니다.
<그린 마일>은 사형수가 감방에서 나와 사형장까지 가는 복도에 깔린 초록색 리놀륨을 가리키는 은어입니다. 배경은 교도소,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진 죄수들만 관리하는 사형수 감옥이예요. 예정된, 이미 지나간, 현재진행형인 죽음들! 그리고 그곳엔 기적도 있었죠.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고 그 이름이 마시는 커피가 아닌 존 커피라고 수줍게 알려주는 흑인죄수의 의해 일어납니다. 그는 거대한 몸집에 두 소녀를 강간하고 참혹히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와는 어울리지 않은 모습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굵은 목이 보일 듯 말 듯 숙여 공포에 떨고 있는-으로 간수장 폴 앞에 서서 이렇게 입을 엽니다.
"밤이 되면 전등을 끄나요? 전 어두운 걸 무서워하거든요."
사실 존은 범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곳에 진짜 살인범이 다른 죄목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폴 / “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왜 당신의 기적을 죽였냐고 물으면 난 뭐라 말해야 되나“
존 커피 / “난 모든 것에 지쳤다. 비 맞은 참새 마냥 홀로 떠도는 것에 지쳤고 함께 인생을 논할 친구가 없는 것에 지쳤고 그리고 사랑을 담보로 사람을 죽이는 이 모든 것에 지쳤다.”

2. 서머셋 몸의 <페인티드 베일>

스티븐 킹의 <그린마일>

서머셋 몸의 '인생의 베일'을 원작으로 한 2006년작 <페인티드 베일>입니다. 작품의 의도와 분위기를 나오미 왓츠와 노튼의 명품연기로 온전히 이끌었다고 봐도 될 만큼 둘의 앙상블은 놀랍습니다.
배경은 1925년 중국 상해, 세균학자 월터 페인은 런던 어느 파티장에서 키티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마침 그녀도 숨 막힌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터라 월터의 청혼을 수락해요. 하지만 행복도 잠시, 허영에 자유분방한 키티는 월터의 단조로움과 무뚝뚝한 모습에 권태로움을 느끼던 중, 외교관 타운젠드와 잘못된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월터는 분노 대신 콜레라가 창궐한 오지 작은 마을로 자원하고 키티에게 함께 가길 요구합니다. 당연히 키티는 차라리 이혼해달라 하지만 결국 월터를 따라 오지 마을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루에도 여럿 죽어나가는 오지에서 둘은 일절의 대화도 없이 그렇게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는데..
어리석었던 키티, 질투와 분노에 그녀의 날개를 꺾으려한 월터. 메이탄푸의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연신 부채질을 하며 숨막혀하는 키티와 어쩌다 한 번씩 눈은 맞추지만 그녀를 경멸하는 듯한 월터의 시선, 그렇게 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보는 이들에게 묘할 만큼 감정이입을 끌어냅니다. 

"무슨 일이 있었소?"
"괜찮아요."
"기절을 했다면서?"
"이젠 괜찮아요. 월터, 잠깐만요! 나 아기를 가졌어요."
"아기? (웃으며) 확실한 거요?"
"네."
"굉장한 걸! 얼마나 된 것 같아?"
"2개 월요. 더 될 수도 있구요."
"키티, 내 아이요?"
"잘 모르겠어요. 미안해요."
"음...어쨌거나 상관없어. 그렇지 않소?"
"그래요.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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