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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사람- “우선 구하고 보자, 그 순간 다른 생각은 없다
최영 부안 해양구조대 대장

막바지 휴가철에 격포해수욕장을 찾았다. 올해 부안해양구조대 대장이 된 최영(50. 진서면)씨가 해양구조대 지휘소에 앉아 해변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다. 취재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선글라스를 벗고 깍듯이 허리 숙여 악수를 청한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다.
“서울에서 하던 일도 잘 안되고 부모님께서 젓갈 가게를 하시는데 부모님을 돕자 마음 먹고 고향에 내려왔죠. 심심하던 차에 뭔가 할 것이 없나 찾다 스킨 스쿠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전 관리나 예방 활동이 필요해 보여서 아는 형님들, 친구들과 함께 해양구조단을 만들었습니다.”
최영씨는 해양구조대 외에 방범대, 의용소방대 활동도 20여년 동안 해왔다. 누군가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이 좋아 줄곧 이어졌다.
“지원금도 있지만, 장비도 구입해야 하고 아르바이트생 임금도 줘야 하니까요. 부족한 것은  회원들이 회비를 걷어 운영하고 있죠. 봉사활동입니다.”
인터뷰 중에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구조대원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안전선 밖으로 나간 해수욕객이 보인다. 곧바로 안내방송이 이어지고 해수욕객이 안전선 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확인 한 후 인터뷰가 이어진다.
“글쎄요. 왜 봉사활동을 해왔는지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내가 왜 그랬지? 허허허. 그냥 봉사활동을 좋아해요. 사람과 어울리는 것. 누군가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 그런 것이 좋았어요.”
누군가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종종 이유를 묻는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그 질문은 위험하다. 봉사활동에 이유가 있다면 그건 정치가 아닐까? 최영씨가 내미는 스마트 폰을 보니 또 다른 봉사활동이 있다. 2년에 한 번씩 진서면 향토회가 주관한 경로잔치 사진들이다. 최영씨는 10회 째라며 자랑에 열중이다.
“신혼 때는 부부싸움도 많이 했죠. 맨날 밖으로 싸돌아 다닌다고, 지금은 나이 들어서 뭐, 하하하. 서울에서 친구 소개로 만났는데, 처음부터 그랬죠. 난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 한다. 아님 헤어지자. 허허. 아내가 고생 많이 했죠. 부모님 모시느라, 일 하느라…….”
봉사활동은 한 사람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뒤에 그림자처럼 겹쳐지는 가족들이 있다. 밤낮으로, 바다로, 사고 현장으로 최영씨는 뛰어갔다. 기다리는 그 가족의 심정은 어땠을까?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 견뎌준 가족들 또한 대단하다.
휴가철의 경우 구조대원의 방송에 따르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피서객이 많다.
“수영 잘하니까, 걱정하지 말라. 술에 취해 시비 거는 사람. 그럴 땐 좀 덥죠. 하하하. 별 수 있나요. 그러려니 하면서, 우리 욕 먹어가면서 일 합니다.”
해양구조대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인명구조라고 한다. 자연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안 될 때가 많이 힘들죠. 그래서 자전거도 타고 달리기도 30분씩 매일 했었어요.”
입수자를 발견하면 먼저 주변에 알린 후 필요한 장비(기다랗게 생긴 인명구조용 튜브, 레스크 튜브)를 챙겨 뛰어간다. 모래사장과 질퍽한 갯벌을 지나, 자신을 향해 몰아치는 파도에 몸을 던진다. 입수자가 있는 곳까지 온 힘을 다해 헤엄쳐 가면 가장 위험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입수자를 안전하게 붙잡는 것이다. 대부분 필사의 발버둥을 친다. 튜브를 건네받은 입수자가 호흡을 확보하게 되면 상황은 조금 진정된다. “괜찮습니다. 제가 구조해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되풀이 하며 모래사장까지 다시 헤엄쳐 나온다. 해변에 도착하면 바로 걸을 수 없다. 그대로 쓰러진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 거기에다 혼자 CPR까지 하게 될 경우 철인 3종 경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5년 전에 군산에서 온 고등학생이었는데 허우적거리는 걸 발견하고 구조해서 CPR까지 실시했죠. 119에 인계했는데 다행히 3일 만에 깨어났다고 하더라구요. 이 일로 군수님 표창도 받았습니다. 하하. 위험한 순간도 있었어요. 7년 전인가 필리핀 남성 세 명이 파도에 휩쓸리는 걸 혼자서 구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골이 파열됐어요. 인천까지 가서 수술 받았죠. 물론 힘들고 위험하지만, 구조대원은 목표만 봅니다. 그 순간 다른 생각은 없어요. 구하고 보자. 내가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구조대 못해요.”
그렇다고 무작정 구하러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람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구조대원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다. 대원 교육을 시킬 때도 “내 안전이 지켜져야, 누군가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물론 먹고 사는 일이죠. 장사도 해야 되고. 하하하.” 활짝 웃는 최영씨. 그는 진서면에서 생계로 젓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의 안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굳건히 지키길 바란다.

이일형 수습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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