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식히는 반가운 단비가 내린 직후였다. 안개에 휩싸인 계화산 아래 스무 집 되어 보이는 양지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여느 집 담벽에 ‘현미 수제 누룽지’라고 쓰인 벽서가 한눈에 들어왔다. 계화 양지노인회 생생마을 공동체가 일구고 있는 누룽지 사업이 마을 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취재 기자가 도착했을 때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마을회관 앞 정자에 모여 계셨다.
“안녕하십니까? 마을 사업에 대해 취재 왔습니다. 어떤 분이 잘 아실까요?” 취재 지자의 질문에 “바로, 우리요. 여그 있는 사람들이 죄다 일하는 사람들이요.”라며 마을 어르신들이 반갑게 응해 주셨다.
-어르신들께서 하시는 마을 사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올 3월 21일부터 시작했어요. 바다 막히고 나서 할 일은 없고, 이장님께서 노인들 일자리 만들어 보자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출자해서 법인 만들고 지원금도 받구. 그걸루 해서 공장 지었어요.”
“처음에는 조청이랑 청국장 만들어서 군민의 날, 면민의 날에 가서 팔았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드만요. 그럼 우선 누룽지라도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런데 다들 맛이 좋다고 하네요. 아, 참 맛을 보셔야는디 내 정신 좀 봐.”
“맛만 좋은 게 아녀. 우리가 직접 심은 신동진 벼를 도정해서 그날 바로 생산혀. 여그 말고도 누룽지 하는 데 많답디다. 그래도 우리 꺼 먹어 본 사람은 죄다 우리 꺼가 제일이랍디다.”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아침 아홉 시부터 시작해서 다섯 시까정 일 해요. 근디 오늘은 비가 와서 습이 차면 안되니께 일찍 끝났어요.”
“처음에 밥솥에 밥 안치고 동시에 기계에 불을(건조기 가동) 때요. 밥이 다 되면 초밥기계로 모양을 만들고 네모나게 해서 납작하게 눌러요. 첨엔 손으로 다 했죠. 그담엔 말리는 기계(195도로 가열된 건조기)에 넣어요. 다 되면 꺼내서 일일이 포장작업 하죠.”
“전부 스물일곱 명인디, 한 집에 한 명씩만 일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전부 여섯 조인디 한 조에 다섯 명씩 일 해요. 어떨 때는 여섯 명도 일 허고 좀 저기 하면 둘도 일 허고.”
-마을 분들이 뜻을 모아 함께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우선 좋지요. 일 헌게 좋고 누룽지도 잘 팔리고. 힘든 줄도 몰러요. 우리 마을에는 노인들이 앞에 끌고 다닌 그거 한 명도 없어요. 여가 장수 마을이요. 여든 잡순 양반도 일 혀요”
“더울 때는 좀 힘들드만. 불 세 개 때먼(건조기 3대 가동 시) 땀띠도 나고. 그래도 공장만 잘 되면 노는 것보다 낫지. 누룽지 먹지, 돈 벌지, 운동 되지.”
“뭔 돈을 벌어? 우리 아직 돈 한푼 못 받았어. 수익 나면 기계도 사고 대출금도 갚느라. 이제 앞으로는 똑같이 나눈다고 합디다.”
“처음에는 한 푼도 못 받으니께 불만도 좀 있지만……. 그래도 참고 했지. 공장이 잘 되면 마을도 잘 되는 거다. 생생마을공동체라고 하드만.”
-판매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도시락 상자 같은 데도 담고 지퍼백에도 담고 해서 전부 택배로 보네요. 많은 날은 30~40만원도 나가고 적으면 20만원, 없는 날도 있는디. 그래도 그 다음 날 되면 다 팔리고 없어요.”
우리 딸은 토요일날 와서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네요. 그래야 빨리 팔 수 있다데.“
“다 우리들이 직접 팔았어요. 친척들, 자식들이 여기저기 소개하면 또 거기서 입소문이 나가지고 지금은 서울, 경기, 울산 암튼 각지에서 연락이 와요.
“며칠 있다가 (법인 대표 명의 변경)허가 나면 농협에서도 팔수 있다는디. 홍보관인가 거그다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해준답디다. 군, 면, 우체국, 이장님들 모다 도와 주신 게 그저 고맙쥬.”
-마을 분들이 함께 사업을 해나가시는데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그래도 외지 사람 아니고, 내 동네 사람이 같이 일하니께 좋죠. 사정 있으면 대신 일해주기도 허고.”
“왜 없겠어요? 뜻이 서로 안 맞을 때도 있고, 아무래도 돈이 오가다보니까, 재정은 누가 담당하냐? 이장은 공동으로 하자. 그래서 매월 종기총회를 해요. 조합원이 스물 일곱인디 다 모여요. 그래서 문제점이 있으면 개선하자.”
“안 좋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공동체니께. 섭섭해도 참고 우리가 다 잘 되는 길이다 생각허요.”
지난 3월에 마을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계화 양지노인회 생생마을 공동체법인은 현재 현미 누룽지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마을회관 옆에 지어진 작은 공장이지만 3개월만에 대출금도 모두 갚고 맛도 일품이라며 사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폭염이 극심했던 날에도 주문이 들어오면 힘든 줄도 모르고 누룽지를 만들었다.
인터뷰 내내 어르신들의 말씀은 구수한 누룽지처럼 따뜻하게 전해졌다.
10일부터 뽕누룽지 시운전이라는데, 새롭게 시도하는 뽕누룽지도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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