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신고리 5,6호기 원전을 계속 건설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됐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화 과정을 주관하는 역할이고, 신고리 5,6호기 원전을 둘러싼 최종 판단은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단이 하게 될 예정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들이 참여해서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관련해서 논란이 많다. 그 중에 일부 주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첫째, 일부에서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원전건설 같은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냐?’ 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주권자들이 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것이다. 그리고 주권자는 비전문가들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전문가라는 사람들끼리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렇게 할 것이면, 선거를 할 이유도 없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대부분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일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역할을 맡기는 이유는 주권자인 시민들을 대표하여, 시민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만약 전문가들끼리 결정할 것이면, 언론도 필요없다. 언론도 비전문가들 아닌가?
오히려 전문가들끼리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에서 어떤 형태로든 유·무형의 이익을 받아 왔거나 받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떠나서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원전 전문가라고 하는 일부 교수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그들 중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해관계로 얽힌 전문가들보다는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시민들이 판단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원전 같은 문제를 국민투표나 이해관계로부터 중립적인 공론화과정을 거쳐서 결정한 사례들이 많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 최초의 원전을 완공한 상태에서 국민투표로 원전의 가동여부를 결정했다. 국민투표에서 1%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로 반대가 많이 나오자, 완공한 원전의 가동을 포기했다. 이탈리아, 스위스 같은 나라들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한 나라들이다. 스웨덴도 원전과 관련된 국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이런 나라들이 국민투표로 원전에 관한 정책결정을 한 것은 그것이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시민합의회의라는 방식으로 원전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내렸다.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찬·반 양쪽의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토론을 해서 판단을 내리는 방식이었다.
둘째, 원자력공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원전과 관련된 정책결정에 대해 전문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원전건설과 관련된 정책결정은 경제, 사회, 환경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종합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특정한 분야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지금 제기되고 있는 쟁점들 중 많은 부분이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여서, 기계적 판단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전건설을 중단할 경우에 전력수급에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는 전력수요 예측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전력수요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 등에 대해 지나치게 저렴하게 부담시켜 오던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에너지효율성을 강화하면 전력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 전기요금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도 정부정책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다. 전체 전력수요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우선 올리면 가정의 부담은 당장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전력수요관리의 측면에서 보면, 전체 전력수요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대전력수요(피크수요)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정부의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력수요는 계절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데, 발전소는 최대전력수요에 맞춰 짓게 된다. 그렇다면 가장 더울 때와 가장 추울 때의 전력수요만 잘 관리해도 발전소 몇 개를 안 지어도 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에 피크관리를 통해서 18%의 전력수요를 줄이기도 했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어느 정도 속도로 확대할 수 있는지도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비중이 3%대에 불과했던 독일이 지금 30%대의 전력을 재생가능에너지로 해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전력정책은 ‘전력독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수의 관료, 전문가, 이해관계집단들 중심으로 정책결정이 이뤄졌다. 그래서 ‘원전마피아’, ‘전력마피아’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해법은 민주주의뿐이다. 그래서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10월까지 활동할 공론화위원회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해외의 시민참여 사례들을 참조하여 제대로 된 공론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민배심원단의 구성도 추첨제 시민의회 같은 방식으로 시민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아일랜드가 헌법개정을 추진하면서, 99명의 시민들로 시민의회를 구성해서 운영하고 있는 것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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