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면 비득치를 지나면서 외약쪽(왼쪽)의 의상봉을 쳐다보면 둥근 모양의 레이더기지가 보인다. 이곳에는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민간인 출입 금지지역이다. 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의상봉에 왜 이런 시설이 들어섰는지? 언제부터였을까? 전에는 미군도 있었다는데, 이들은 언제 철수했는지? 이런 저런 질문이 꼬리를 물지만 거기까지다. 이런 것을 알려다가 혹시나 군부대의 비밀을 캔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어 관심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지레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군부대에 대한 호기심은 지역에서는 금기어(禁忌語)처럼 됐다.
읍에서 가까운 행안과 변산의 의상봉에 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부안사람이라면 말 안 해도 거의다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부안에서 나오는 책자에는 군부대에 대한 언급은 찾기가 힘들다. 물론 신문 기사에는 공군부대 방문이나 의상봉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청림 천문대에서 별 관측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미담도 확인한다.
의상봉에는 해방 후에 미군들이 주둔했다. 이들의 주둔은 꽤 먼 곳에 사는 어린 우리들에게도 상당한 호기심이었다. 동네에는 박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부모가 의상봉 주변에서 장사한다는 얘기를 자랑처럼 하고 다녔다. 친구 집에 가보면 생판 처음 보는 잡지들이 방구석에 굴러다녔다. 영어로 된 잡지는 그림만 봐도 새로운 세상에 눈 뜨는 것 같았다. 미군들은 통조림을 반절도 먹지 않고 버린다는 확인 안 된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겨울이 가까울수록 친구집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겨울에 필요한 쥐불놀이 깡통을 이 집에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바람 부는 들판에서 맨 날 불놀이에 빠져 있었다.
미군에 대한 기억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대광마을 앞에는 지금은 건물이 사라졌지만 색시집이 있어 미군들을 상대했다. 하서 백련마을 사람들은 또 다른 기억이 있는데 미군들이 큰 트럭을 가지고 와서 문수동 냇가에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고 한다. 이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기름이 둥둥 떠 다녔고 아이들은 이곳에서 잡지나 깡통을 주웠다. 미군들이 언제 의상봉을 떠났을까. 미국 대통령 카터 때였을 것이라는 얘기도 듣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의상봉에는 지금도 공군부대가 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군인들은 외부인이나 투명인간이 아니라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다. 이들의 존재를 남북분단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하고 이 시대 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지난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면 부안의 지워진 역사 한 부분을 복원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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