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파랑·하양 3색의 원통형 회전간판이 빙빙 돈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 흰색은 붕대를 뜻한다. 이는 중세 유럽에서 이발소에서 이발과 함께 간단한 외과수술이 행해졌던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큰 거울이 먼저 반긴다. 이발소 안의 김영팔이발사는 이웃을 만난 것처럼 살갑게 맞는다. 백산초등학교 앞에 있는 평일이발관이다. 필자가 언제부터 이곳의 단골이 됐는지 기억이 가뭇하다.
시설은 6, 70년대를 기억케 하는 반가운 풍경이다. 바리캉, 비누거품솔, 물뿌리개 등 어렸을 때부터 봤던 물건들이 아직도 현역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발관의 철제 의자는 큰곰처럼 무게가 많이 나갈 것이다. 머리 감는 세면대 역시 옛날 그대로다. 먼지에 쌓인 빨간 별표가 여전한 오래된 금성 라디오는 지금도 소리는 또렷하여 옛날 동무를 만난 듯 반갑다.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라고 걸려 있는 액자는 80년대 초에 유행했던 머리 모양이다. 이발관 그림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빨래하는 아줌마와 초가집 지붕에는 박넝쿨이며 빨간 고추가 마당에 널려 있다.
이발기구를 넣어두는 장식장도 옛날 그대로이고 드라이기계도 이제는 찾기 힘든 옛것을 고무줄로 묶어 쓴다. 김영팔씨는 전에 썼던 기구들은 기름에 덧칠해서 종이로 싸서 보관하고 있다. 시내버스 시간표를 적어 붙인 빛바랜 종이도 반갑다. 잉크로 꼼꼼히 적은 시간표 밑에는 컴퓨터로 깔끔하게 만든 것도 같이 있다.
김영팔씨는 16살부터 이발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큰 마을에는 이발관 하나쯤은 있었다. 이 때만해도 이발기술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은 줄을 섰다고 한다. 머리 감겨주는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 집도 있었단다. 그 때는 먹여주는 집만 있어도 감지덕지였다.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식구 많은 집에서는 큰 걱정거리인 입 하나를 던 것이다.
전주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군에 갔다 와서 평교에 자리를 잡았고 같은 골목에서 미장원을 하는 아내와 만나 결혼했다. 지금 자리는 평교 장터로 일본사람 집터였는데 해방 후에 집을 지었고, ‘민생약국’ 하던 집을 사서 85년에 이발관으로 만들었으니 30년하고도 3년이 되어간다. 
옛날식 이발소 건물을 지역의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면 어떨까. 화려하지 않아 사람들이 관심 갖겠냐고?, 누가 시간 내서 찾겠냐고 묻는다면 말길을 잃는다. 원한다면 민간인들이 이런 곳에 관심을 갖고서 소박한 간판 하나쯤 걸만도 하다.
(사족)-필자는 퇴직 후에도 몇 개월 동안 평일이발관을 다니다가 요즘에는 집 주변에 옛날식 이발관 하나를 용케 찾아서 다니고 있다. 김영팔씨가 선물로 준 바리캉 하나는 기름종이로 꽁꽁 싸서 간직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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