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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 군인복무 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
  • 염규홍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
  • 승인 2017.05.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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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상단에 손글씨로 “장관실에, 장관, 총장, 사령관, 합수본부장,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 육사교장(차). 전 각하 : 초병에 대해 난동시 군인복무 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쓰여 있다.

5·18 민주화운동 37주기를 맞아 지난 정권의 학대를 받아온 ‘님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묘역 기념식장에서 비로소 제창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발포책임자와 헬기사격 등 완전한 진상규명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반해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때 학살도, 발포 명령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발포책임자와 관련해 ‘자위권 발동’이라 적시된 문서를 이미 입수한 바 있습니다. 37년이 지난 오늘 민주 영령의 넋을 기리며, 해당 자료와 함께 당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 재직했던 염규홍 전북교육청 인권옹호관의 기고를 싣습니다.  / 편집자 말

 

염규홍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

5.18이 다시 왔습니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37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기념식에서 1만여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헬기사격을 포함한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밝혀내고,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고, 헌법에 5.18정신을 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위의 자료는 제가 2007년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으로서 기무사령부에서 제출받은 문서 중에 하나입니다. 2007년 7월 24일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에도 수록된 것입니다.
위의 자료는 제2군사령부에서 1980년 5월에 작성한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이란 문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제2군사령부는 1980년 광주지역을 관할하던 31사단을 지휘했습니다. ‘충정작전’은 당시 민주화운동, 즉 데모 등을 진압하는 것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문서는 다시 말하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던 당시의 군의 지시사항과 그에 따른 조치사항을 정리한 문서인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문서는 5월 17일부터 작성되고 있습니다. 그 중 위의 자료는 5월 21일자 내용이 있는 부분입니다. 5월 21일은 광주 도청 앞에서 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를 한 날입니다. 자료 가운데 부분에 5월 21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윗부분은 5월 20일 내용입니다.
맨 위의 ‘23:20 작전지침 추가(작상전 444호)’라는 내용은 5월 20일 밤 11시 20분에 작전지침을 추가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발포 금지, 실탄 통제’입니다. 5월 20일 밤 11시 20분에 발포을 금지하고 실탄을 통제하는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이 명령은 내리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5월 18일부터 계엄군으로 광주에 온 11공수, 7공수, 3공수여단의 특전사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광주시민의 민주화운동을 진압합니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요. 이에 대항하여 광주시민들도 더 가열차게 투쟁합니다. 5월 20일 광주시청과 가까운 광주역 부근에서도 대규모의 시위가 벌여졌습니다.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3공수여단(여단장 최세창)은 트럭에 실탄을 싣고 와서 현장에서 나눠주었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합니다. 그래서 이 정보를 여러 곳에서 확인한 제2군 사령부가 발포를 금지하고, 총탄을 통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 아래 ‘5월 21일 군사령과 순시 및 작전지도, 육본회의 참석(소탕계획 건의)’는 당시 2군 사령관이었던 진종채(전두환에 앞서 보안사령관 역임. 전두환의 후원인격)가 사령부가 있던 대구에서 출발해서 ‘광주-육본-국방부-광주-대구’로 돌아왔다는 내용입니다. ‘국방부’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손 글씨로 ‘1次’(차)라고 써 있는 것은 진종채 사령관이 당시 국방부에 2차례 방문하는데 그 중 첫 번째라는 것입니다. 오른쪽 위에 손글씨로 써 있는 내용이 당시 국방부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장관실에, 장관, 총장, 사령관, 합수본부장,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 육사교장(차). 전 각하 : 초병에 대해 난동시 군인복무 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국방부 장관실에 주영복 장관, 이희승 참모총장(계엄사령관), 진종채 2군 사령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정호용 특전사령관, 차규헌 육사교장 등 7명이 모여 회의를 했고, 그 회의에서 전두환이 ‘자위권 발동’을 ‘강조’했다, 즉 시민에게 발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입니다. ‘각하’라는 표현을 볼 때,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쓴 글씨이며,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다른 문서가 있을 것입니다. 그 문서에는 발포명령과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만한 진상규명의 핵심문서가 될 것입니다.
전날인 5월 20일부터 공수부대원들은 실탄을 지급받고 실제로 시민을 향해 발포했으며, 5월 21일에는 전두환도 시민을 향해 발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므로, 이미 실탄을 지급할 당시에 발포를 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바로 밑에 있는 ‘15:35. 사태 수습을 위한 참모총장 지시(작상전 455호)’에는 ‘지휘체계 일원화 군사기 진작’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즉 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이루어지면서 시민들도 자체 무장에 나서자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명령이 계엄사령관인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의 명의로 작전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 명령서에 ‘지휘체계 일원화, 군 사기 진작’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3공수, 7공수, 11공수여단 등이 현지 계엄업무를 하던 제31사단(사단장 정웅)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데, 다른 지휘체계를 가지고 작전을 했다는 고백입니다.
즉, 이 문서는 전두환, 정호용 등 신군부가 광주에서의 무자비한 진압과 발포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를 남겨놓은 자료입니다. 국가반란과 내란의 수괴범들이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않도록 제가 다하지 못한 진실규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염규홍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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