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규홍 전북도교육청 인권옹호관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 온 모든 악담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광주사태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와 희생이 컸던 만큼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또 상처와 분노가 남아있는 한, 그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겠다.”
“광주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 나를 비난하고 모욕주고 저주함으로써 상처와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나로서도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헌법을 유린한 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대통령이 당선된 이때, 국가반란, 내란으로 헌법을 유린했던 수괴인 전두환의 헛소리들은 분노를 치미게 합니다. 오히려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항변하며, ‘나로서도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피가 거꾸로 솟구쳐 욕이 저절로 입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자는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군사반란과 내란 수괴, 5.18민간인 학살 주도, 내란목적살인 등 9가지의 죄목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바 있습니다.(1심에서는 사형, 2심에서 무기형으로 감형, 김영삼 정부가 1997. 12. 22. ‘국민대통합’이라며 특별사면).
필자는 2005년 국방부에서 만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과장으로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 작업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2년여 동안 국방부 내의 각종 군사비밀자료, 1980년 보안사가 생산했던 비밀자료와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출동했던 공수특전단의 부대원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습니다. 국가 반란 및 내란 수괴범 전두환이 자서전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을 뿐더러 죄값을 치른 범죄자의 반성문도 아닙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전두환의 자서전이 터무니없는 주장임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어 전두환의 자서전 내용이 헛소리임을 알 수 있으므로, 다른 한 가지 사례만 예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전두환은 1980년 5월 17일 이루어진 전국 확대계엄이 5월 10일 있었던 북한 특이동향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이후에 취해진 조치라고 항변합니다. 전두환은 5월 10일 중장정보부 2차장인 김영선으로부터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짙다는 ‘북괴남침설’ 첩보를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입수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한국내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1980년 5월15일부터 5월 20일 사이에 남침을 감행한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전두환은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 서리를 겸임하며 남한내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첩보를 바탕으로 5월 12일 임시국무회의를 열도록 하였고, 5월 17일에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1980년 5월 10일 당시 군 내부에서 작성된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위의 북한남침설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전두환 등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이러한 첩보를 활용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북한의 정보를 분석, 판단하는 담당부서인 육군본부 정보참모부는 일본에서 제기하는  ‘북한남침설’ 정보는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1980년 5월 10일에 작성한 ‘북괴남침설 분석’에 따르면 5월 15일-20일 사이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 “북괴가 전면 남침시는 준비를 위한 공격 징후가 노출될 것이나, 현재로서 특이 징후 없으며 남침 일자 근거 없음”이라고 평가했으며, 북한이 휴전선 전역에 병력 집결을 완료했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병력 집결 징후 없음”이라고 한 후, “입수첩보는 신빙도가 희박하며, 북한 군사동향은 정상적인 활동수준으로서 특이 전쟁징후는 없음”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황영시 당시 육군참모차장도 5월 12일 참모부회의에서 “북괴가 남침준비를 위해 병력전개를 완료하였다는 일본의 첩보는 벌써 6회나 거짓말을 하고도 체면이 선다는 것인가? 혹시 그들의 고등술책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전두환과 같은 신군부 세력으로서 중요한 직위에 있던 황영시 당시 육군참모차장겸 계엄부사령관도 일본에서의 그런 첩보가 일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흘리는 술책이라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전두환 일파는 북괴남침설이 신빙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권력장악을 위해 북한의 위협을 조작했던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과화해위원회’ 등 과거의 군사독재시절 일어났던 인권침해의 진상을 밝혀 정의를 바로세우려는 과거청산 작업이 있었습니다. 보통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정의를 세우는 과거청산에서는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배상, 제도개혁(재발방지를 제도개혁 및 교육), 문화적 구축(명예회복 및 정신계승을 위한 기념사업) 등 5대 원칙에 따릅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전의 과거청산은 오늘에도 전두환이 자서전에서 자신이 억울하다고 헛소리를 할 만큼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한다.”
이 말은 전두환이 자서전에서 한 헛소리입니다. 학살자가 피해자인양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는 주장이 나오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과거청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권고한대로 헌법을 개정할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과거사 청산이 잘못된 과거의 정리나 반성의 차원을 넘어 미래의 밝은 전망을 세우는 것이며, 전두환 같은 학살자의 헛소리도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묘역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국가 공식 행사에 포함되기를 바랍니다.
전두환이 졌다는 십자가가 아닌 광주가 짊어진 십자가를 생각하는 5월이 되기를 바라며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의 한 대목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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