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49)

올해 부안군민대상 체육부문에 김정기씨가 선정됐다. 생활체육으로써 족구를 정착시키고 대중화하는데 이바지 했다는 것이 선정이유다. 기자는 널리 알려진 구기종목이 아니라 군대문화의 소산이라 여긴 족구가 상을 받을 만한 종목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컴퓨터와 주변기기가 가득 진열된 그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책장 가득한 트로피가 기자를 기다렸다. 다부진 인상에다가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웃는 눈은 성공한 사람으로서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뭐, 저에게 상을 주었다기보다는 족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상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족구연합회 사무국장, 2014년부터 2년간 족구연합회 회장, 2017년엔도 족구협회 상임감사를 지냈으니 대략 15년 가까이 족구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기자는 일부러 그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졌다.
“족구는 군대에서 체력단련을 핑계로 소일거리 했던 게임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족구는 삼국 시대부터 망을 걸어놓고 공을 넘긴 데서 시작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유일한 구기종목이고, 장소의 제약도 없고 돈도 많이 들지 않는 아주 알찬 생활체육인 셈이지요.”
족구와 그에 대한 선입관이 한 꺼풀씩 벗겨지자 어떻게 족구와 연을 맺었는지 궁금했다.
“친구들과 함께 주말에 족구를 했어요. 주말 내내 연습을 하고나서 초보를 갓 벗어난 이들이 경쟁하는 3부 리그 출전했지요. 그런데 예선탈락 했어요. 3부 리그라고 해도 좀 충격이 컸어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컴퓨터를 학교에 보급하면서 학생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학생들을 족구 선수로 기른다면 부안의 족구가 정착되리라는 희망이 보였어요.”
족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부안에 족구를 정착시키고 대중화하기 위해서 학생들부터 가르치기로 했다. 10년 동안 부안 족구 연합회 사무국장을 도맡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었다. 보통사람의 경우 족구를 즐기다가 어느 정도 실력이 늘면 자신의 여가 생활 정도로 만족하면 그만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폭 좁은 족구판의 경기장에 드넓은 부안족구의 미래를 그려냈다.
“축구선수로 활약하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축구를 그만 둔 학생을 보았어요. 운동신경은 탁월한데 축구 외에 다른 꿈을 꾼 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아가 되기 십상이잖아요. 학교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겨서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족구를 가르치면 어떻게 변할까 궁금했습니다.”
1.1m 높이의 네트를 설치하고 4명씩 팀을 이뤄 발과 머리만을 이용해 족구공을 쓰리터치로 넘기는 족구게임은 그에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사업상의 문제도 족구를 하듯 공격과 방어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했는지 복기하며 실패를 줄여나갔다. 족구와 사업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공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 족구는 자신만 잘한다고 해서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라 화합과 협력이 중요한 것처럼 지역사회에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법에 눈을 돌렸다. 생활체육으로서 족구가 지역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를 펼쳐놓고 족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고민해 보았다.
“관내 학생수가 적어 축구팀을 꾸릴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았어요. 축구와 달리 가정형편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상의 위험도 적어 족구가 안성맞춤이었어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를 찾아 학생들의 족구를 지도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하자 그는 행정전문가인 후배 송인호씨를 사무차장에 앉혀 행정과 집행의 일을 돕도록 하고, 창녕의 오봉석 감독을 초빙해 체계적으로 족구를 가르칠 수 있었다. 부안족구의 전성기가 도래된 시점이었다.
“부안의 청소년팀은 전국의 최강자가 되었어요. 타 지역의 학생들이 부안에 와서 족구를 배울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전국대회 우승을 휩쓰는 일보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족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고 족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되었어요. 족구와 함께 한 시간은 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족구를 통해 꿈꾸어 왔고, 족구를 통해 꿈을 이루었다. 족구가 부안에 정착되고 대중화된 것처럼 그의 인생과 사업도도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서중, 줄포자동차고, 백산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전국대회를 휩쓸었고, 도민체전 왕중왕전 우승의 기쁨도 누렸다. 그의 사무실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트로피는 족구에 대한 열정의 대가였다. 그러나 그는 트로피를 매만지면서 족구에 대한 다른 시각을 말해주었다.
“시합에 참여하면 누구나 이기려 하지요. 그런데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누구나 패자가 될 수 있어요. 문제는 승복하는 자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엎치락뒤치락 하지요. 실패를 받아 들여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족구나 인생은 그런 면에서 통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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