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미 시인
1. 해격포 앞바다에선
날마다 해가 빠져죽는다
그리고
다시 뜨거워지기 위해
이 세상 날마다 다시 온다
2. 왕포마을
옛날의 뒷방에서 나와
어머니들이 밥을 짓는지
저녁은
비릿한 간고등어 냄새를 풍긴다
어느 집이나 내 집 같은 왕포마을
3. 모항 - 가로등
저 둥근 알전구 밑에
서 있으면
기적처럼,
얼마 안 되는 집들이 가진
안방의 따스함이 전해져온다
집밥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저녁에
4. 하섬
사람이
머물 수 없도록
그리움이
살 수 없도록
새우처럼 등이 굽고
가슴이 까맣게 죽어버렸다
생은 이토록 잔인하다
5. 능가산 - 메아리
山도 외로우면 말을 한다
아아아아……,
외로워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6. 썰물
사는 게 뭐 별 거냐
대거리 하는 내게
바다는 한 수 물러서는 법을 알더라
7. 갈매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가슴도
깎아지른 절벽으로만 보일 뿐
내려설 곳이 마땅치 않다
8. 솔섬
그림자가 없다
외로운 섬의 얼굴
두 번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다
9. 채석강
켜켜이 쟁여진
저 많은 대지를 읽느라고
바다는 여지껏 죽지도 못했다
볕 좋은 곳에 무덤자리 하나 봐둬야겠다
10. 파도
그 옛날
자주 가던 막국수 집
욕쟁이 할매한테서나 얻어들었을
혀 짧은 소리들
나이가 드니
그 잔소리마저 정겹다
11. 북어
내 안에서
지독히도 안간힘썼던 것들
있는 그대로
나를 살았던 건 아니다
내 전부를 살았다고 믿어왔던 삶이,
저토록 멍하니 떠 있는 걸 보면
12. 바람
역마살이 낀 게야
가슴의 불과,
떠도는 영혼과,
추워 떠는 삶과,
지붕 없는 잠과,
배고픈 그리움과……,
이것이 내 피의 기구한 내력인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