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미나(38)씨.
바람이 매서운 날이었다.
늘상 봄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오건만 열망을 머금은 여름과 풍성한 결실의 가을 또한 잉태하였기에 오만한 자태로 대지 위에 군림한다.
차가운 바람을 머리칼에 듬뿍 묻히고 들어선 카페엔 활짝 피어오른 목련 같은 웃음을 머금은 서미나씨가 한 눈에 나를 반긴다.
사람의 웃는 얼굴은 신이 준 축복이다.
“이름에 받침자가 하나도 없네요”
“아빠가 굴곡 없이 편히 살라고 받침 없이 지어 주셨어요”
그녀는 고슴도치 모양의 섬 위도에서 태어나 어부인 아빠의 지대한 영향 아래 자라났다.
22세가 되기까지 잘생긴 근육질의 아빠가 최고의 이상형이었다는 그녀의 첫 직장은 농협이었다. 사회초년생인 그녀는 낯선 느낌의 인간관계가 버거워 사회를 배우고자 도시인 광주로 나가 의류판매업을 하며 1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온 도시는 탁한 공기 속에 담으로 둘러쳐진 잿빛 소음이었다 한다.
도시생활을 접고 격포에 내렸을 때의 감회를 말하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제 보니 그녀의 화사함엔 바다내음도 담겨있는 듯하다.
야간으로 대학을 다니며 어린이집 보육교사일과 야간보육까지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그녀에게 아빠가 던진 “삶을 누리면서 살라”는 한 마디는 지금도 쟁쟁히 귓가에 울린다고 한다.
그 또한 그럴 것이 그녀의 아빠는 삶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굴곡진 삶을 살다가 5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리라
적극적인 다가옴으로 결혼한 그녀의 남편 또한 지금을 즐기라고 한다며 어쩌면 놀이강사로 활동하는 이유의 가치 제공자가 아닐까?
2015년 부안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한 전래놀이자격증반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받기까지 그녀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동학대, 정서불안, 애정결핍 아동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는 그녀, 서미나씨의 인생2막은 아이 둘의 엄마로서 놀이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함으로 열리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그녀는 틈만 나면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맘껏 놀게 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요?”
“일단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고 싶어요. 놀이친구가 되어 스마트폰에만 길들여져 가는 아이들에게 여유로움과 사랑도 느끼게 하고 싶구요”
하긴 의도하지 않아도 몸으로 소통하며 맘껏 놀다보면 저절로 감정이 순화되며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 같다.
그녀는 부안전래놀이 자원봉사동아리모임인 ‘흥부놀부’의 회장이다.
‘흥부놀부’는 흥이 있는 부모, 놀이하는 부모와 흥이 있는 부안, 놀이하는 부안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2015년에 결성된 이 모임은 처음 27명의 회원으로 시작되어 지난 한 해의 강행군으로 회원수가 조금 줄었으나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부안의 축제인 마실축제, 개암동 벚꽃축제, 부안동초 재능기부, 매창공원 행사 등 놀이마당을 펼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는 ‘흥부놀부’ 얘기를 하는 내내 신명이 나 있는 그녀에게 놀이는 삶 그 자체인 듯 보인다.
“방문놀이학습도 하시나요?”
“네, 유치원이나 학교도 방문하고 개인으로 가가호호 방문도 해요”
“주로 유치원 아이들인가요?”
“아니요, 대상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예요. 접근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요”
놀이자체가 삶이라는 그녀의 가치를 폄하한 어리석은 질문이었음에 스스로 얼굴이 붉어진다.
“앞으로의 꿈은 어떤 게 있을까요?”꿈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 빛내며 다가와 앉는다.
“부안군에 놀이학교를 개설하는 거예요. 그게 힘들면 사설학원이라도 열거예요”
놀이학교......
놀면서 배우는 곳
즐겁게 놀면서 놀이를 삶과 접목시키는 곳이 있다는 건 참으로 흐뭇한 정경이다.
삶은 유희며 놀이참여는 행복한 삶에 다가서는 자율적인 치유행위이자 이타적 통치행위임을 인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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