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룡(66세)

평생 쉼 없이 달려왔으나 그다지 숨 가쁘지 않게 삶을 즐기는 만학도 오성룡씨는 책부자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아낙네 같은 마당에 들어서자 마음이 푸근해진다.
여기저기 무심한 듯 서있는 나무며 자유롭게 널려있는 농기구들이 편안히 맞이했기 때문이리라
올해 91세 되신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그는 의외로 막내사위다.
아내가 막내딸이니 자연스레 막내사위지만 아들내외와 살면서 쓸쓸해하는 장모님을 뵙고 모시자고 제안해서 집으로 모신지 벌써 13년째다.
정갈하게 정돈된 실내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빼곡하게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이었다.
“책이 정말 많네요?”
“어릴 때부터 활자로 된 모든 것을 읽는 습관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10살 때 돌아가신 이후에 어려워진 집안 살림으로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게 한이 됐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때는 한 달에 열흘만 학교에 나가도 일등을 했었죠”
“공부에 맺힌 한을 풀고자 방송통신대에 입학하셨나 봐요”
“정읍에 있는 남일중학교와 통신고등학교를 거쳐 2011년에 수능시험을 치렀어요. 내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도전했었죠. 그 이듬해 2012학번의 방통대 새내기가 됐지요”
아직 몇 과목을 더 수료해야 대학을 마친다는 오씨는 지금도 대학생이라며 활짝 웃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만 꼽으라면 뭘 말씀하시겠어요?
“책, 사람, 가족은 기본이구요”
“좌우명이라 한다면 내가 한 약속은 확실히 지키라는 겁니다. 두 아들이 자랄 때도 늘 해주던 말입니다”
두 아들 모두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 것만 보아도 집안의 가장이 몸소 실천하는 책읽기가 산교육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보니 책에서 얻은 지식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체계가 잡히더라는 오씨에겐 책에 관련한 작은 소망이 있다.
그것은 현재 방통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비인가 학습관이 작은도서관으로 결실을 맺게 되면 집에 있는 책 3,000여권을 20,000권으로 늘려 기증하는 것이다.
“책을 꾸준히 잘 읽을 수 있는 노하우가 혹시 있나요?”
“워낙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중년이후엔 간혹 중간에 졸기도 하기 때문에 서서 책을 읽습니다. 아내가 사다 준 책 받침대가 아주 유용해요. 하체건강에도 좋고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큰 아들 대학 입학 후 못 배운 한을 풀고자 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아내였고 나이 들어 우리문화를 알아야한다며 풍수지리를 배워 볼 것을 권한 사람도 아내였다. 아들 둘을 잘 키워내 주고 자신을 한없이 믿어주는 아내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그 또한 성실하고 든든한 가장이다.
그도 그럴것이 150필지 모심기와 고구마와 양파, 마늘농사를 지어가며 이장으로서의 역할과 10년째 사회복지관에서 1주에 1회 봉사를 거르지 않으니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어찌 신뢰하지 않겠는가
13년 연하의 아내가 22살 때 오씨의 남다른 눈빛을 보고 먼저 프로포즈를 청했다는 말에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던 듯하다하니 아내는 남편을 향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3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가 서로에게 보이는 신뢰가 이러하니 참으로 신선한 충격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살짝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의 집 구조를 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안네의 일기’를 떠올릴 만큼 요새 같은 느낌을 받는데 벽으로 막힌 것 같지만 다다르면 작은 방이 있고 또 살짝 돌면 작은 침대가 놓여 있어서, 어딘가에 틀어박혀 책 읽고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집안을 둘러보니 구석구석 오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쓰기에 편하도록 고치고 덧댄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 자체로 아내를 위해 배려한 사랑의 흔적으로 남아 집안가구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손재주가 좋으신가 봐요”
“구옥이다 보니 위풍을 방지하려고 고민하다가 공간활용을 할 겸 다용도실을 만들고 따로 샤워실도 만들었지요. 돈이 부족하니 절약하려고 조금씩 손을 댄 거지요”
어느 집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그들만의 집을 오씨 내외가 배려와 사랑의 이름으로 탄생시킨 것이었다.
배려와 사랑은 관계를 소중히 여김으로써 열매를 맺는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놓치고 지나온 숱한 관계와 현재 제대로 일구지 못하는 관계들이 실타래처럼 엉켜들고 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세요?”
“100이면 100% 만족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윤동주 시인의 시처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책 읽고 농사준비 하며 봉사할 생각하면 늘 행복합니다”
그가 10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등불’이라는 봉사 동아리의 이름처럼 자신과 가족과 사회에 등불이 되려는 그의 삶의 태도는 한 마디로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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