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이든(14세)

다가오는 3월이면 중학생이 될 이든이에게 방학 중인 2월은 잘 구워진 군고구마를 먹을 때처럼 기분 좋다.
취미인 만화를 맘껏 그려서 스토리를 덧입히는데도 여유롭고 동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일 또한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직장생활로 인해 부안의 외할아버지 댁에서 자란 이든이에게 어릴 적부터 소통을 위한 통로는 만화그리기와 컴퓨터로 동영상 편집하는 것이었다.
이번 겨울엔 부모님과 동생이 부안으로 거주지를 옮겨서 한층 마음이 넉넉한 방학이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만두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소년, 귓불의 송송한 솜털 위에 봄이라 하기엔 연약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요즘 관심사가 뭐예요?”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 함인지 빤히 쳐다보는 눈에 호기심과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스친다.
아이들 말처럼 너무 훅 들어간 질문이었던 듯싶다.
“아......동영상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만화 만드는 거요”
무장해제 상태로 한 방 제대로 맞았다.
아마도 게임이나 TV보기 책읽기 등등을 상상했었나 보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대화의 틀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었음을 인식하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리셋 후 재부팅하느라 질문의 속도가 느려진다.
“언제부터 동영상 편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만화에 대한 관심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살다보니까 심심해서 삼촌 컴퓨터를 자꾸 만졌어요. 삼촌이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아빠가 노트북을 제게 주셔서 그때부터 컴퓨터로 검색하고 게임을 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양정환 담임선생님이 컴퓨터 수업시간에 이미지뷰어 프로그램인 알씨(alsee)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동영상 편집에 대해서 알려주셨어요. 정말 신기해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차를 타고 함께 놀러가는 영상’을 만들어 다음날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친구들도 좋아하고 선생님도 칭찬하셔서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을 하거나 얘기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때의 언어는 전신언어다.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조회 수는 얼마나 되요? 가장 많은 횟수는요?”
함께 조회 수를 찾아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적은 조회 수도 10여회가 넘었고 많게는 12,000회가 넘은 것도 있었다.
그 또래들이 좋아할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을 잘라 이어 붙이고 음악이나 효과음을 덧입힌 것이었는데 유저들 사이에 이정도면 인기쟁이라고 안 할 수 없다.
“만화그리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혹시 만들어서 가지고 있는 게 있나요?”
“아마 57편쯤 될거예요. 주제를 정하고 계속 그려서 저장해 두고 있어요”
입이 떡 벌어졌다.
저 나이에 난 꿈을 위해 반복된 연습을 했었던가?
“주제는 어떤 거죠?”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약한 사람들은 밀리고요. 주인공 가족들이 빚을 져서 고통 받고 쫓기면서 억지로 노동하는 내용이예요”
천진하게 말하는 소년 앞에서 되뇌고 있다.
‘권력, 돈, 빚, 노동’
이 소년의 입을 빌어 이 사회 압축된 단면이 단어가 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술술 나오는 유창한 설명임에도 헤비메탈의 쇳소리에 툭툭 무언가 끊기며 상기시키고 내 마음의 와이퍼가 작동하고 있다.
“어떻게 지속해서 만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요?”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어떤 때는 서너 번 씩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불편하지 않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해요”
얼마나 일관성 있게 성실한 소년인가
이 의젓한 친구가 이제 중학생이 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에 걸맞은 질문을 해보기로 한다.
“좋아하는 과목이 뭐예요?”“미술과 사회요. 그중에서도 경제부분이요. 역사 쪽은 별로예요”
자기표현이 확실하다.
질문을 하면 머뭇대지 않고 즉답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기 때문인 듯하다.
“중학교에 가면 뭘 하고 싶어요?”
“행안초는 정말 학생 수가 적어서 친구를 많이 사귈 수가 없었어요. 중학교에서 더 많은 친구들과 사귀고 싶어요”
우린 역시 친구가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노력하는 사회적 동물임을 자각한다.
“미래의 꿈도 지금의 취미와 관계가 있나요?”
“네. 만화가나 파워 크리에이터(광고제작부문 1인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정말 행복하겠네요”
세상이 다양하게 변하고 그로인해 생겨나는 새로운 직업군 속에서도 건재하는 건 무엇일까?
갑자기 이 소년의 만화주제가 떠오른다.
권력 돈 빚 노동 그리고 사랑 행복 예술......
말풍선이 점점 부풀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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