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수(80)

급변하는 시대, 밀레니엄 세대 이후 요즘은 굳이 세대 구분을 하지 않는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도 하거니와 헬조선, 흙수저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의 삶이 그만큼 녹록치 않음을 시사하는건 아닐까
김만수씨(상서면)는 이 격동의 시기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컴퓨터를 두루 섭렵하고 인터넷 과거시험을 거쳐 ITQ정보기술자격증을 보유한 능동적인 인물이다.
부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다 군 제대 후 당시 쌀 50가마 상당의 학비가 버거워 대학을 중퇴했다는 김씨의 전공은 수의학이다.
“지금처럼 AI다 구제역이다 난리인데 계속 공부하셨으면 쓰임이 많으셨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 등록금이 워낙 비싸서 농촌에서 학비를 댈 수가 없었어요. 군 입대 전에 결혼을 했으니까 처와 아이도 있었구요”
부안으로 돌아와 처음 잡은 직장은 농협이었다. 주된 업무는 비료를 판매하는 일로 71년 비료 한 포의 값은 600원이었다며 지난 일을 기억해 냄에 있어 한 치의 오차도 없다.
80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먼 기억의 시간 속에서 수치와 전문용어들을 잘도 끄집어낸다.
컴퓨터를 다룸에 있어서도 그 활용이 남다를 듯 했다.
“언제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그게 직장일과 관련이 있는데 농협에서 근무할 때 컴퓨터가 도입되었어요. 비료를 판매하다 보면 재고가 생기는데 재고물량을 파악해서 컴퓨터로 보고하라는 거예요”
“처음에 당황하셨겠어요?”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보니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서 엄청 낯설고 생소했어요”
대학시절 학교 LAB실에서 처음 접했던 까만 바탕에 모스 기호 같은 영어를 가득 품고 있던 그 네모난 낯선 기계가 떠올랐다.
“일을 하는 10년 동안 계속 컴퓨터로 보고서를 올려야 하니까 내가 불편하고 필요해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어디서 배우셨나요?”
“처음엔 여성노인회관, 농촌진흥원, 김제군 백구면  농민교육원을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여성이 아니신데 여성노인회관을 찾아 가셨네요”
“갈 수 있었어요. 가르쳐주기만 한다면 어디든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그렇게 배우는 게 성에 안찼어요. 수업시간이 끝나면 강의실을 폐쇄하니 연습도 할 수 없구요”
그렇게 컴퓨터를 더 익히고 싶은 열망 속에 찾은 곳이 부안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부안복지관에서 강의를 듣고 만족했고 시설도 좋은데다 수업시간 이후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활용도가 높다고 했다.
다양한 삶이 존재함에도 반복적인 편린의 구역만 오가는 우리네 삶의 규칙에 그 구역을 벗어날 탈출구는 능동적 행위의 적극참여자에게만 열려지는 게 아닐까
“컴퓨터를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정보를 검색하고 문서작성과 프린트를 하지요. 또 카페에 가입해서 집에서 기르고 있는 유산양을 판매하기도 해요”
김씨는 정보진흥원에서 실시한 인터넷 과거시험에서 입상하고 ITQ정보기술자격증 A등급을 보유하고 있어 영문 한글 타자는 물론 표와 차트 작성, 수식과 도형그리기도 능숙하다.
자격증을 따고 나니 자신이 생겨서 컴퓨터를 배우고자 하는 동료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는 김씨의 얼굴에 노력하여 결실을 얻어 본 사람 특유의 열정 어린 미소가 피어난다.
“복지관에서 컴퓨터 말고 배우시는 게 또 있나요?”
“그라운드 골프를 하다 관뒀어요. 아무래도 컴퓨터가 제일 적성에 맞아요”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다 보니 3남3녀의 자녀 중 아들 셋은 모두 외국에 거주하고 딸들 또한 모두 출가해 잘 살며 그간 고생을 참고 살아준 아내에 대한 고마운 표현까지 사사로운 일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요즘 또 다른 취미인 유산양 키우기를 소개하는 대목에선 절로 인자한 할아버지 미소가 번진다.
 “직접 유산양에서 짠 젖으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어 먹는데 지병인 당뇨를 잡는데도 좋고 새끼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귀여운 아기 유산양들을 떠올리자 한 마리 분양받아 키우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사는 동안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씨의 올해 계획은 건강하게 잘 살면서 마을의 이장으로서의 책임 또한 잘 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은 딸 내외와 잘 지내고 있는데 마을에 독거노인들이 많다며 그분들을 위해 군에서 지원 받아 마실사랑방을 꾸밀 계획이라며 마을일에도 적극적인 김씨의 80대는 무료할 틈이 없어 보였다.
컴퓨터를 배우고자 하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또한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컴퓨터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며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의 광야를 휘젓듯이 훌쩍 80의 나이를 뛰어넘어 청춘을 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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