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둔 경매장을 찾아

“고루마~ 고루미~ 고루미~” 경매사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중얼중얼 댄다. 셔츠 안쪽에서 손이 삐죽이 나오더니 엄지 하나를 쭉 내밀었다가 순식간에 나머지 손가락을 쫙 편다. 종이깔판을 든 사람이 “에따” 소리를 내더니 판밑에서 엄지와 검지를 내 보인다.

고구마가 한 상자에 7천원에 팔렸다. 열서너 명이 쭈뼛거렸지만 아줌마가 주인이 됐다. 이렇게 고추 부추 쪽파 상추 깻잎 열무 토란대 등등 채소가 팔리고 “포로~ 포리~”하던 포도 바나나 귤 무화과 배 자두 등 잔뜩 쌓여 있던 과일도 다 팔렸다.

경매는 잔뜩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가끔 “왜 손을 안 빼는 거여. 손 빼란 말여”하는 경매사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나쁜 것은 내리고 좋은 것은 올려쳐야지 손구락이 나가지”하고 되받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걸죽한 웃음이 늘어진 주름을 타고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내내 “요렇게 안 산게 뭣(물건)이 안 들어와~. 손구락 좀 빼~”하는 경매사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날 “월요일은 손구락을 길게 뺀다(비싸게 팔린다)”는 서영림 씨의 훈수를 듣고 온 터라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생각은 빗나갔다. “가격이 흡족하게 안나와. 뭐헐라고 대목 앞두고 사겄어. 대목에 냉장고에 넣어 둔 것 팔라고 허겄어? 다음주부터는 좋은 것이 많이 나올 것잉만, 상인들도 그것을 알지. 지금은 이래도 그때 되믄 서로 안 준다고 난리여. 쌈도 하고 그려. 철이 그려.” 경매사 김성기 씨의 말이다.

아직 본격적인 대목 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단지 이유가 그 뿐만은 아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속내가 드러난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부안 경제가 어려워요. 요 앞에 있는 분들(청과상들)이 장사를 못하니까 여기 영농조합도 타격이 커요. 생긴 지 10년인디 요새는 힘들고만.” 핵폐기장 때문에 장사가 안됐는데 요즘에는 가뜩이나 대형 할인매장(마트)이 들어서서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지금 부안에 마트가 3개 있는데 하루에 4천만원 넘게 번다고 허대요. 세 집이면 2천만원씩만 잡아도 6천만원 아닌가. 그 매상이면 재래시장 한집당 50만원씩 판다고 해도 120집이 살 돈이오. 경기가 안 좋으니까 시장에 문 닫는 사람들 많은데 그 사람들 이 돈이면 다 문 열고 장사할 사람들이여. 근게 마트에서 손님들 다 가져간 거여.”

임영환(가명) 씨는 좋은 가격대에 사과를 샀다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 3만5천원 주고 샀는디 요즘 시세로는 비싼 것이 아니거든. 다른 해에 비해서. 대목에 낼라고 좋은 것을 안 내니까 가격 형성이 안 되서 그렇지 과일값은 금방 오를 거라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는 혼자말처럼 한마디 한다. “오늘 샀은게 대목까지 안가고 다 팔리겄지.” 물건이 좋아도 팔리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다.

1시간 30분만에 경매가 끝났다. 트럭을 경매장에 대놓고 물건을 싣고 있던 젊은이는 “뒤에 것은 오전에 팔고 앞에 것은 오후에 다 팔아야 쇼부를 친다”며 황급히 차에 올라탔다. 그는 마을을 돌며 마이크를 들고 소리칠 것이다. 경기가 좋든 말든. “맛있는 꿀 사과가 한상자에 2만원, 고소한 밤고구마가 한 상자에 만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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