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자(65세)

부안종합사회복지관 문인화 강사로 활약했던 인연으로 만난 김영자씨(부안읍)는 보랏빛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덕분에 집안대청소를 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따끈한 자리를 권했다.
벽면에 걸려있는 문인화에 눈길이 머물고 묵향에 취해갈 즈음 동행한 사회복지사 김금희씨가 스스럼없이 커피를 내온다.
“두 분이 엄청 친하신가 봐요?”
아니라는데 그럴수록 더욱 진한 친숙함이 묻어나는 건 착각 아닌 직감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내 집에 누군가 오면 이미 그건 나만의 집이 아닌 푸근한 소통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스승인 서예가 김두경씨(강암 송성용 외손자)가 지어 준 安石(안석)이라는 호와 걸맞게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그녀의 집안은 묵향으로 그윽했다.
결혼 전 잠시 서울에서 직장생활 한 것을 빼곤 내내 부안에서 슈퍼를 운영하며 살아오고 있는 그녀의 부안생활은 성실과 부지런함이 몸에 밴 사이로 넉넉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이 마치 부업인양 인터뷰 내내 닫혀 진 방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진솔한 대화에 응했다.
“언제부터 서예와 문인화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90년대 사회생활을 위해 부족한 한자를 배우고자 서예실을 찾았다가 먹의 향에 취해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고 싶어졌어요. 처음엔 배우는 게 그저 좋아서 꾸벅꾸벅 먹을 갈다 졸면서도 즐거웠어요”
그렇게 시작한 서예와의 인연이 2006년 문인화를 시작하면서 그 폭을 넓혀가고 약력 또한 어느새 화려해졌다.
현재 김 씨는 전북 서예협회 초대작가, 정읍사 서예협회 초대작가, 전주온고을 미술협회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며 전라북도 미술협회 특선 2~3회,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 3~4회 수상경력이 있다.
또한 부안에서 매년 열리는 ‘매창휘호대회’에서 6회 연속 특선, 1회 장려의 수상기록도 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익산 모현도서관 문인화 교육과 부안 문화원 문인화 교육, 노인여성회관 켈리그라피 과정, 부안읍 자치센터 한자교실에서 자신을 단련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 배움의 결실의 일환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부안복지관 노인대학에서 사군자를 지도하며 자신의 재능을 더불어 공유함에도 인색함이 없었다.
그 당시 자전거를 타고 강의시간에 늦을까 휘휘 달리다 가방을 잃어버린 일이 있을 정도로 맡은 일에 대한 책임과 열정이 남달랐다.
“문인화를 통해 알게 된 부안종합사회복지관 이춘섭 관장님과 사회복지사 김금희씨는 나의 재산이지요”라며 그녀에게 소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좋은 인연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슈퍼마켓에 집중하지 않고 서예와 문인화 등에 시간과 정성을 너무 많이 쏟으시면 슈퍼마켓 운영에 어려움은 없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유쾌한 웃음과 함께 나직한 대답이 돌아온다.
“비밀인데요, 실은 알바를 해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우릴 향해 말을 잇는다.
“새벽에 직장인들 출근하기 전에 계단 청소하는 건데 운동도 되고 돈도 벌고 아주 좋아요. 사장님들이 믿거니 열쇠를 맡겨 회사도 청소했어요. 몇 군데 할 때는 무조건 100만 원씩 자동이체해서 지금의 집을 샀어요”
“아, 그렇게 해야 돈을 모으나 봐요. 자신과의 약속에 철저하시네요”
“그런 편이죠. 일에 대해서도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은 없어요. 혹시 사정이 생기면 양해를 구하고 주말에 청소하거나 다른 사람이라도 사서 보냈어요”
사람이 소중하다고 하는 그녀는 이미 관계의 소중함을 간파하고 있었다.
김씨의 얘기를 듣다보니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그녀의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걸까요?
“주위사람들에게 폐 안 끼치고 스스로 열심히 살고 돈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거예요. 내 주변엔 정말 좋은 사람이 많아요”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곱게 차려입은 한복, 따끈하게 데워진 구들장, 미리 끓이다 쫄아 버린 생강차 등 오늘의 만남만 보아도 그녀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며 잘 쓰시는 것 같은데 게으른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요즘은 배우려고 하면 기회가 정말 많아요. 부안에 좋은 프로그램이 아주 많은데 할 게 없어 무료하다고 하면 되겠어요?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서 배워야죠”
“안 배우고 노는 사람 보면 답답해요. 하도 바쁘게 사니까 갱년기가 올 틈이 없었는데 요즘 좀 우울해지는 듯해서 책을 읽고 요가를 시작했어요”
한시도 자신을 나태와 우울 속에 두지 않고 독려하는 그녀에게 생동감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별로 안 부지런해요”
“지금 그렇게 사시는 게 부지런 하신 거예요”
“그런거예요?”
한바탕 웃음 뒤에 여운이 남는다.
자신에게 엄격하기보다 남에게만 엄격한 나 너 우리, 나 자신에 관심을 두고 독려하기보다 남에게 간섭을 일삼는 나 너 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삶은 지치고 건조해진다.
나 너 우리가 함께 행복하려면 나에겐 엄격하고 타인에 관대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가꾸면서  타인은 그저 바라봐 주는 그런 태도라면 살맛나지 않을 런지요.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