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민
우리는 어쩌다 이런 나라에서 살게 되었을까?
권력은 있는데, 통치자는 있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87년 체제라 불리는 대통령 직선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한다. 권력에 시민의 자리도, 몫도 없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실종되었다고 봐야 한다.
청년에게 미래는 없다. ‘헬조선’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유행어가 이를 반영하지 않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광주, 대구, 부산 도시마다 촛불을 밝히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이 직접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은 통치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이 ‘우리에게 힘이 있다!’는 주체의 발견이다. 지금 우리에게 화두는 ‘권력 - 민주주의’이다.
가장 심각한 원인은 ‘국가권력의 사유화(私有化)’이다.
공화제의 기본 원리인 ‘공공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Republic의 어원은 ‘공적인 것, 공공의 이익’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로마 공화정에서 통치원리의 핵심이 바로 ‘공공성’이었다. 이를 보장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법의 권위가 있었다.
이러한 공화국의 주체는 시민, 자유로운 시민이었다.
허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법치와 공적 질서는 온데간데없다. 재벌과 행정 관료, 검사와 정치인들 ‘그들만’이 보장된 무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민주공화국은 껍데기뿐이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노동의 소외를 넘어, 인간의 본성을 제멋대로 가위질하고 있다.
오랜만에 국회 청문회에 대한민국의 재벌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이셨다(?). 결과는 어땠는가?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몸통’들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을 기대했던 국민들로서는 씁쓸하게 입맛만 다신 셈이다. 정경유착. 기득권은 여전히 공고하다. 이미 우리 사회의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는 갈 때까지 갔다. 정부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한 경쟁을 부추기며 불평등을 정당화시켰다. 지난해 기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40% 남짓 수준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대의제, 다수결 같은 짝퉁민주주의 말고.
대의제 민주주의가 더 이상 시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까?
4,5년에 한번 투표하는 행위를 제외하곤, 고작해야 보름 남짓의 선거운동 기간을 빼놓곤, 유권자인 시민이 나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엇이 있는가? 우리 자신을 향한 칼끝 그 칼자루를 쥐어주기 위한 통치자를 선출하는 요식절차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의 신뢰에 기반 한다. 구성원 각자의 자유가 온전히 지켜지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이 보장되며, 자기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공화제에 대한 책임과 훈련으로 시민이 먼저 충실하게 교육받아야 한다. 동시에 공공성의 회복과 시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의 체계를 제대로 갖춰내야 한다. 권력을 청와대, 국회로부터 광장으로 되찾아오는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 한 판 붙어야 한다.
탄핵 이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 또다시 여-야 정당의 잔치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7년 대선은 정책대결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촛불을 밝힌 광장의 주인공들이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를 정책으로 만들어 내고, 이를 누가?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선거는 형식일 뿐이다. 시민혁명이 되어야 한다.
마침 2018년 지방선거와 이어져 있다. 이번 촛불이 탄핵을 넘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력을 재편할 수 있기를. “모든 권력을 시민에게! 광장으로!”
희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이들의 몫이다.
겨울이다. 발 딛고 있는 얼어붙은 대지 아래에 가득한 생명의 그 뜨거운 에너지를 품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봄을 준비해야 한다.
 
 봄 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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