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준호(51)

“동짓달에 멍석딸기 찾는다”라는 속담은 철이 지나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찾는다는 뜻으로 철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거나 불가능한 상황임을 말하려 할 때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동짓날이었던 어제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탐스러운 딸기를 후식으로 몇 개를 먹었다. 제철 과일을 찾기 힘든 시절이다.
그동안 비닐하우스 시설재배를 통한 딸기 농사는 겨울철 농한기의 농가소득에 효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쪼그려 앉고 엎드려서 일을 해야 하는 딸기 농사의 특성상 농촌의 고령화와 이에 따른 노동력 감소는 작목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부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지산딸기로 널리 알려진 동진면의 구지마을도 11집의 딸기 농가가 이제는 한 농가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가는 마당에 잘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딸기농사를 통해 인생의 2막 1장을 열겠다는 이가 있어 그의 연극무대인 “붉은딸기밭”농장을 찾았다. 부안 스포츠파크 입구에서 심고정을 지나 700년 되었다는 전주최씨 선산 옆에 빨간색 패널로 지어진 농장의 관리동과 이어진 거대한 흰색 시설하우스가 보였다. 순간‘붉은 딸기밭이 바로 저곳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푸근하고 신사다운 풍모를 지닌 농장주 최준호씨(51)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딸기라는 작물을 선택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나 사연이 있나요?”
“제가 근무하던 직장에서 하던 일이 그룹의 신규 사업 진출에 시장여건이나 미래의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경영진이 결정하는데 필요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분석하기에는 농업분야, 특히 이러한 시설원예를 통한 농산물 생산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판단되어 긍정적인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분위가가 좋지 않다는 판단으로 경영진은 포기를 해버리더군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만약 퇴직을 한다면 내가 한 번 해보자’라고요. 퇴직 후 농진청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딸기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최준호씨의 딸기는 ‘딸기 고설 수경재배(양액재배)’시설에서 자란다. 고설이라 함은 성인 가슴 높이에 시설이 있어 노동력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뜻이고 양액재배라 함은 흙이 아닌 배지에 작물을 심고 물과 양분은 파이프라인을 따라 공급한다는 뜻이란다. 또한 온도와 습도, 채광, 양액공급이 자동화시설에 따라 조절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급과잉으로 가격 변동이 심할 경우 같은 호광성(빛을 좋아하는)작물인 토마토나 파프리카로 품목을 전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조 3천억 원의 내수시장에 동남아 수출시장까지 감안하면 가격 변동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타 작물보다는 적다는 판단과 등급별 가격차이가 최고 6배까지 나는 딸기의 특성을 감안해서 과학적 시설관리를 통한 고품질의 딸기생산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는 고품질 딸기가 어떤 것인가요?”
“경매시장에서 바로 드러나는 것이 딸기의 품질입니다. 딸기의 크기, 당도, 색상, 향미, 경도(단단한 정도), 그리고 균일성이 모두 어우러져야 합니다. 잼용 딸기는 수확하는 인건비도 안 나오지만 최상품의 딸기는 1개에 500원 정도 합니다. 상당히 고가이지요. 그래서 겨울딸기는 배불리 먹기 보다는 식후 디저트로 몇 개 정도 먹는 것이 요즘 추세입니다”
딸기고설재배는 자동화시설을 이용한 시설관리, 작물의 생육, 병충해 방제, 경영관리까지 많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최준호씨 본인의 전문적인 데이터가 축척될 때까지는 주변의 경험적 조언에 의존하는 방식은 최대한 지양하기로 했다.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의 딸기농가 몇몇을 엮어서 국내 최고의 딸기 전문가인 대구대 황진규박사와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인적네트워크의 도움을 받는 것을 선택했다.
지난달에 3년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첫 출하를 했다. 모든 과일이 그러하듯이 제일 먼저 열리고 제일 굵은 것이 최상품이란다. 팔기가 아까울정도로 소중하고 탐스러운 녀석들이었다. 물론 경매장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벌써부터 경매사들끼리는 부안의 최 씨 딸기가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품질이 균일하고 경도가 좋아서 쉽게 무르지 않으니 판매소진 때 까지도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기라고 한다.
기자가 찾은 당일 하우스 안은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썰렁한 느낌이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첫 출하를 하고 지금은 다음 출하를 위해 저온 처리중이라서 그렇습니다. 온도를 올려서 생육을 빠르게 하면 수확은 빨라지겠지만 그렇게 하면 품질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천천히 과육이 단단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지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는 기본이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딸기를 만든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수확체험을 와서 직접 주스도 만들어 시음도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란다. 또한 먼저 정착한 귀농인으로서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농업과 귀농에 관련된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한다. 
단내가 풀풀 나는 딸기 향처럼 그의 인생 2막도 달콤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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