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

   
▲ 유재흠 미래영농조합법인 상임이사
정부수매, 천년의 솜씨벼 수매, 농협 자체 수매...  농사의 마지막 결실을 이루는 각종 수매장의 분위기는 예년과 다르게 썰렁하다. 엎친데 덮쳤다. 쌀값이 폭락한 데다 수발아(벼에서 싹이 나는 현상) 문제로 등급도 형편없다. 1등 나락이 거의 없다. 가격은 선지급금으로 kg당 900원이 못된다. 작년에 비해 200원 이상 하락한 가격이다. 쌀값으로 보면 80kg 한 가마에 3만 원정도 하락했다. 처음으로 쌀값이 밀, 보리 값 이하로 떨어졌다.(밀 값은 kg당 1,050원이다) 적당한 품질의 개사료 값이 kg당 2,000원~3,000원 정도 한다. 비싼 것은 kg에 10,000원 이상 하기도 한다. 커피 전문점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이 4천500원 정도 하니, 이 가격이면 쌀이 3kg쯤 되고, 이는 어른 20명이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쌀값은 유사 이래 가장 낮게 평가되고 있다. 정상적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쌀을 팔아서 논농사의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 직불금이 없다면 필자의 계산으로는 1,200평에 50만원씩의 적자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왜 쌀값은 이렇게 폭락했을까? 정부는 ‘누적 재고’ 때문이라고 한다. 적정 재고량의 4배 이상의 재고로 인해 쌀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또, 소비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쌀 소비량은 최근 10년간 1인당 2kg정도씩 줄어들어 현재는 1인당 1년에 64kg정도의 쌀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재고 증가와 소비량 감소로 인해 앞으로도 쌀값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을까? 쌀값이 떨어지면 국가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정부가 쌀값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수단은 없을까? 궁금하다.
쌀값하락의 요인이라고 하는 소비량 감소는 해마다 줄어드는 농지(1년에 2만ha)로 상쇄된다. 필자는 지난해 “앞으로 쌀값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쉽게 폭락하지는 않을 것” 이라는 전망을 이야기했다. 그 근거는 정부가 지출해야하는 변동직불금이 쌀값이 하락한 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직불금을 지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적정한 쌀값을 유지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훨씬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는 것이었다. 실제로 쌀값이 1만원 떨어질 때마다 정부가 지출해야 할 직불금은 약 4천억 원씩 늘어난다. 쌀값이 3만원 떨어지면 정부지출이 1조원 이상 늘어나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재고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까지 따지면 정부 입장에서는 100만톤 이상(적정재고 40만톤, 현재 재고 160만톤)을 무상으로 정리하더라도 이익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정부가 쌀값을 적정 수준(적어도 15만원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농민들에게도, 국민들에게도 모두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정부가 각종 수단을 최대한 동원할 것이라고 보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 섞인 전망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최근에 벌어진 국정농단사태를 보고서야 의문이 풀린다.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은 대박으로 시작해서 쪽박으로 끝나고 있다. 가슴이 저리는 세월호, 정유라의 말먹이가 된 국민연금과 저들의 분탕질을 포장하고 있던 껍데기뿐인 창조경제...... 이 와중에 쌀값폭락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그냥 다른 일에 묻혀 도매금으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쌀값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대북지원이었다. 적게는 10만 톤에서 30만 톤의 쌀이 대북지원을 통해 ‘시장격리’와 ‘남북교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수단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교류의 단절은 개성공단 폐쇄를 정점으로 파국을 맞이했다. 통일 대박론도 쪽박으로 결론을 맞고 있다. 이 틈에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도 종북 좌빨의 논리로 매도돼 버렸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많은 중소기업들과 함께 쌀도 갈 길을 잃어버렸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통해 통일 대박론과 개성공단 폐쇄 등 극우 보수적인 대북정책들도 어이없는 국정농단의 일부임이 확인되고 있다.
2017년 직불금 목표가 재설정을 앞두고 직불금을 깎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쌀직불금은 농가소득의 전부이다. 만일 직불금이 줄어든다면 농민들은 대번에 쌀 농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은 쌀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으로 하루 아침에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고, 2007년 국제 쌀 가격이 급등하자 수백만명이 거리로 나와 아로요 정권의 퇴진을 외친 사태를 겪어야 했다. 2010년 전후에 일어난 아랍의 쟈스민 혁명의 배경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아랍권에 밀을 수출하던 나라들이 생산량 감소를 이유로 수출을 금지하면서 발생한 ‘빵값의 폭등’이 있었다.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쌀값 폭락을 얘기하는 것이 어쩌면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 상황과 쌀값이 상징하는 농업의 위기 상황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쌀값을 지키고 농업을 지키는 일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며, 역으로 국정농단의 범죄자를 엄단하고 나라의 질서를 세우는 일은 곧 농업을 지키는 길이 된다. 거리로 나서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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