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부안 군청 앞 잔디밭에서 부안정명600주년 행사가 열렸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대가 부안에서 화려하게 전개되었다. 진행은 매끄러웠다. 기존의 관 행사에서 나타나는 지리한 축사 등 형식적인 요소들이 깔끔하게 동영상으로 처리되면서 관객들은 지루하지 않게 행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
큰 북을 치는 공연에서는 우렁찬 북소리가 청사 앞마당을 흔들었고, 수많은 내외빈 부안군민의 축하 영상이 빠르게 방영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디어 퍼포먼스에서는 현란한 동영상 그래픽 효과로 보는 이들의 혼을 빼앗았다. 비전 선언문이 낭독되고, ‘6만 행복도시/600만 광광도시/부래만복’이라는 구호가 제창되고, 그것을 아로새긴 돛이 무대 위로 솟아올랐다. 이어지는 600군민 합창에서는 천년의 노래 등 3곡의 노래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반주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그리고 여흥을 돋우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와 ‘고향의 봄’이 합창으로 울려퍼지고, 화려한 풍선 날리기로 막을 내렸다.
날씨가 무섭게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쌀쌀한 편이기 때문에 그랬는지 일반 군민들의 참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700석으로 마련되었다는 관람객석은 100여석이 빈 채로 있었고, 그마저 최고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합창이 진행될 때에는 거의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그 빈 객석만큼 그것을 바라보는 필자의 머리 속에는 ‘인문’이라는 글자에 대한 생각이 맴돌았다.
부안의 비전 선언문에는 부안의 미래비전을 네가지로 제시한다. 첫째가 글로벌도시, 둘째 가든도시(정원도시), 셋째 농본도시, 그리고 넷째 인문도시다. 이 네번째 인문도시라는 항목이 필자의 뇌리에 꽂혔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대학에서 가장 먼저 없어지는 학과가 인문계열의 학과들이다. 취직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집정원이 축소되고 결국엔 없어지는 추세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 그리고 부안에서도 인문도시가 비전이라고 한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런데 그 내용이 모순적이라서 도대체 이런 것을 기획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문학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 졌다. 사회에서 부는 인문학 열풍은 물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문학 붐의 한 축에서는 동학에 대한 재평가도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물질세계가 풍요로워지고 이제 정신이 개벽되어야 한다는 핵심 사상 때문이다. 즉 성장 위주, 물질 위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본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 인문학이 주목받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부안의 인문학은 무엇인가? 부래만복이 인문적인 것인가? 한문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이야기는 하는 것이 인문적인가? 6만 행복도시, 600만 관광도시가 인문적인 것인가? 혹 진짜 인문학을 용어 몇 개 멋있게 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정책이 있을 때, 그것을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주민들에게 확인하고, 그것을 실시하는 과정이 있다고 해보자. 이것은 전형적인 관주도의 행정사업이다. 홍보 – 확인 – 집행 이라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정 절차의 이름을 소통 – 공감 – 동행 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해보자. 그것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이름만 바뀐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적인 용어만 빌어다 쓴 것이지, 인문학을 행정에 도입한 것이 아니다.
소통은 공감을 전제로 한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요구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민들의 현재 고통지점이 무엇인지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군민들이 행복으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도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행복도시’를 주장하는 것은 어떤 것이 행복한 것이지에 대한 결론이 군민의 실질적인 요구와 상관없이 이미 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화려한 수사나 치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학의 정신은 민본주의에 있고, 평등주의에 있고, 주민들의 직접적인 자치에 있다. 하얀 옷을 입고 죽창을 든 행진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고, 집강소를 설치하듯 주민자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계승하는 것이다. 지금 집강소를 설치할 수 없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정신이 주민 자치에 있다면 예산학교를 설립하고 주민들이 직업 행정에 참여하도록 교육하고 독려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계승하는 것이다.
주민화합은 600여명이라는 목표를 맞추기 위하여 면단위 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참여 할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를 조직하는 그 방식 자체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진심으로 부안이 인문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외관 외주의 도시 발전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에 기반한 사람 중심의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부안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인문 문화에 대하여 제대로 계승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자산에 대하여 화려한 포장을 통해서 인문도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 그 가치를 계승할 수 있는 힘들고 지루한 과정을 겪어내야만 인문학적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좀 더 숙고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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