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재근 전 부안독립신문 기자
지난해 이 지면을 빌어 2015년 11월 14일에 있었던 1차 민중총궐기에 다녀온 감상을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살인적인 물대포’가 관용어가 아니라 실제 사례로 증명될 줄은 몰랐다.
지난 9월 25일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로 의식이 없었던 보성 농민 백남기씨가 세상을 떠났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그 이후다. 담당 주치의라는 사람이 외인사가 명백한 고인의 죽음을 병사라고 기재하더니, 경찰은 사인을 조사해야한다며 부검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은 그 영장을 발부해버렸다.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빨간 우의’를 입은 참가자가 고인 사망의 원인일 수 있다는 말을 내뱉는다.
이게 무슨 수작인가. 따져보면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다.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니야.’ 그래서 수만 명이 직접 눈으로 보고, 동영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본 이 명백한 사건을 어떻게든 다른 원인으로 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얻는 게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얻는 건 하나 뿐이다. 사과를 안 해도 된다. 
이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나온 대국민사과는 단 두 건이다. 한 건은 기초연금 공약 폐기 때이고, 다른 한 건은 세월호 사고 때이다. 세월호 사고 때는 발표 직후 뭐가 그리 불편했는지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떠나 버렸다. 그 사과가 사과다웠는지는 차치하고, 사과 자체가 이렇게 드물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사과할 일이 적었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과 횟수를 찾아보기 위해 포털에 ‘박근혜 정부’, ‘대국민 사과’로 검색해보니 대국민사과를 요구하는 시민, 야당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대북관계 파탄, 가습기 살균제 피해, 동남권신공항 갈등, 총리·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낙마, 메르스 사태 등등. 최근 줄줄이 드러나고 있는 비선실세와 청와대비서관의 전횡에 대해서는 아예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연루를 부정하고 있으니 아직 사과 요구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대체 왜 이렇게 사과를 싫어하는가? 사과는 곧 실수와 실패의 인정이고, 대책을 마련할 책임을 맡는 것이다. 어떤 정부든, 기업이든, 조직이든 실수와 실패는 늘 있게 마련이고, 대책 마련은 그들의 일상사다. 흔히들 왕은 책임지지 않고 군림한다고 하지만 사실 역사 속의 절대군주들도 대부분 이처럼 사과에 인색하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우리 주변, 아니 우리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명백히 잘못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사과하거나 용서를 빌기를 거부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그 것을 배운다. 보통 심리학적으로 언제쯤 이런 철부지에서 벗어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대체로 초등학교 저학년을 넘어가면 보기 힘들어지는 현상이다.
관료들의 정신연령이 문제인지, 대통령의 문제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라는 그분의 문제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지금 우리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수준의 정신연령으로 돌아가는 나라꼴을 겪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절차고, 제도고 없이 내편이랑은 짝짜꿍하고, 나한테 눈 한번이라도 흘기면 일기장에 적어놓고 꼼꼼하게 되갚아주는 이 행태들이 참으로 그러하지 않은가.
정말 아이라면 성장하길 기다리며 어르고 달랠 일이지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데다 힘도 무지막지하게 센 이가 상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교육철학으로써 ‘매가 약이다’는 폐기상태지만 이 경우라면 아직 유효할 듯하다.
사실 이제 거의 포기하다 싶어서 약을 처방하고 싶은 마음도 없겠지만, 그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매를 들어야 할 때다. 오는 11월 15일 고 백남기 씨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민중총궐기가 열린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