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느려졌다. 정보화, 글로벌 시대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요사이 내 삶이 그러하다는 압축적 표현이다. 태어나서 반백의 삶을 살도록 대도시 생활을 해오던 내게 전북지역에 위치한 부안은 사실 낯설었다. 그저 일상을 벗어나 쉴 수 있는 외곽의 풍광 좋은 지방도시 쯤으로 여겼다고나 할까? 허나 중요한건 그 외곽의 낯선 도시 한가운데에 지금의 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에 온 이유는 사실 한 가지...... 느리게 살고 싶어서다. 부안에서 나고 자라, 농사를 주업으로 하시는 분들께 욕먹을 말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껴왔던 분주함과 숨 가쁜 경쟁, 소란함에서 살짝 발을 빼고 자연과 흙에 한걸음 다가서고 싶은 막연한 욕구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구체화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발생적인 인간선언 아닐까?
여하튼 난 이 곳 부안에 왔고 1년 여 남짓 살아내고 있다. 처음 6개월은 낯선 장소가 주는 호기심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로 마냥 즐거웠다.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작은 뱀쯤은 예사로이 넘길 즈음이 되자 부안의 느낌이 조금씩 버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 부안에 와서 백반 메뉴를 식당에서 접했을 때, 그 많던 나물류와 맛깔스런 반찬에 느꼈던 경이로움과 찬사가 어느덧 식상해지고 있었다. 특유의 뚝배기스런 사투리로 맞이하는 상인들의 어투는 친숙해졌으나 툭 던지듯이 내뱉는 억양의 무거운 느낌이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었다. 상투적인 언어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그것은 어쩌면 퉁명스러움으로, 때론 정리되지 않은 장터의 소란처럼 느껴졌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라치면 제일 처음 묻는 말은 여지없이 “어디에서 사느냐? 토박이인가? 귀농 귀촌이라면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내겐 아직도 마냥 편치만은 않은 서먹한 인사 나눔의 의식은 어제도 오늘도 부안 여기저기서 반복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서걱서걱 인사 나누며 어색해하면서도 싸목싸목 부안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싸목싸목이라는 귀여운 사투리는 어제 지인들과의 만남 후, 헤어지는 자리에서 처음 접했는데 어찌나 귀에 쏘옥 들어와 박히는지 그 말이 주는 어감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 말을 내게 한 후배는 차로 배웅해주겠다 하니 “가까운데 싸목싸목 걸어가지요.”라고 대답을 하며 웃었드랬다. 그런가보다...... 아직 내게는 낯선 이곳의 분들은 싸목싸목 사시는 듯싶다. 하긴 “뭣이 중한디?”
처음 이곳 부안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귀에 들어온 사투리는 “어서 오시게요”였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생경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글쎄 이분들은 도처에서 “...하시게요.”라고 한다. 어서 오라는 건지, 어서 오시라고 하라는 건지 의아했지만 반긴다는 의미임엔 분명했다. 회의를 하다가도 토론이 격해지면 “그만 하시게요”라고 정리하고, 자리를 이동하고 싶을 때도 “그만 일어나시게요”라면서 동의 없이 말을 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분들 예의바르게 권유하지만 행동은 무척 재다. 그래서 혹시 호남이 민주주의가 발달한건 아닐는지.
아직도 부안의 인사 문화나 형님 문화엔 덜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표현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므로 내가 느낀 그 무엇을 스스로 인식했을 뿐이다. 내가 느낀 부안의 인사 문화란 출신지역과 사는 지역을 묻는 형식의 그것인데, 부안 지역 분들이 아마도 땅을 소중히 여기고 땅을 근거로 살아가는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형님 문화란 너도 나도 형님 아우로 호칭하는 끈끈한 연대 문화이다. 실제로 일상에서는 사생활 침해까지 우려될 만큼 개인은 노출되어 있는 듯하다. 처음엔 그러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다가 6개월 여 지나 이 땅의 내음에 익숙해질 즈음 우리라는 단어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요사이 그 느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게 힘이 되고 있음을, 형님과 동생이 도처에 있음에 왠지 푸근함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이렇게 부안은 싸목싸목 나를 부안의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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