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말에서 벗어나기

이번 호엔 일본말 찌꺼기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말에는 알게 모르게 일본말이 널리 스며들어 있습니다. 다쿠앙, 와리바시, 오뎅, 입빠이, 가라오케, 덴뿌라 와 같이 누가 봐도 일본말인 것은 얼른 알아차릴 수 있지만 일본말법이나 일본식 한자말을 직역해 놓은 것은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일본말과 말법은 본디 우리말이 갖고 있는 뜻을 왜곡하거나 우리말이 설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여러 가지 해악을 끼칩니다. 찾아내서 살펴보고 본디 우리말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로 하지요.

8월 중순, 광주에 사는 친구네가 놀러 왔습니다. 민박을 잡아주고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술 한 잔 한 친구가 노래방이나 들렀다 가자며 잡아끕니다.
“자네 십팔번이 뭐여? 십팔번 한번 뽑아봐라.”
나훈아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친구가 노래책을 들이밀며 권합니다.
도대체 이 ‘십팔번’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 앞 뒤 미루어 보자면 ‘즐겨부르는 노래’라는 말 같은데 이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애창곡’ ‘장기’의 뜻으로 쓰이는 ‘십팔번’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입니다. 17세기 무렵, 일본 ‘가부키’ 배우 가운데 이치가와 단주로라는 사람이 자신의 가문에서 내려온 기예 중 크게 성공한 18가지 기예를 정리했는데 이것을 가부키 18번이라고 했습니다. ‘쥬우하찌반-18번’이라고 하지요. 이것을 들여다가 그대로 쓰다보니 즐겨부르는 노래, 또는 뽐낼만한 장기를 가리켜 ‘십팔번’이라고 한 것이지요. 앞으로는 ‘십팔번’ 대신 ‘애창곡’ ‘단골곡’ 이라고 했으면 좋겠네요.

또 널리 쓰는 말 가운데 ‘뗑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쓰는 말이지요. ‘너 자꾸 뗑깡 놓을거냐?’

이 뗑깡은 간질과 뜻이 같은 한자어 전간(癲癎)의 일본 독음인 ‘덴칸’에서 온 말입니다. 흔히 지랄병이라고 하는 간질은, 발작을 하면 한동안 자신의 행동을 기억 못하는 이성마비 증세가 뒤따르지요. 그렇게 질환으로 발작을 하는 모습을 빗대어,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며 떼를 쓴다고 ‘뗑강’이라는 말을 쓰면 곤란하겠지요?
‘뗑깡’이라는 말에 그런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그런 말은 쓰지 않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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