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혼자 밭을 매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 속
벌써 한 달이 가까워 온다
햇빛을 등지고 앉아 호미질을 하다가
무심히 앞을 바라보면
콩 이파리들만 심심한 듯 그를 쳐다보고
입추(立秋)근처에선
매미들만 아랑곳없이 요란하다

친구들은 모두 도시에 산다
사장이 된 사람 주방장이 된 사람
기술자가 된 사람 박사가 된 사람
하루하루 품팔이 노동자도 있고
집사와 장로, 조기축구회 회장도 있다
병실에 앓아 누워있는 친구도 있지만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짓는 건 그 혼자다

소나기가 내렸으면 좋겠다
어차피 옷이야 땀으로 젖었으니
밀짚모자도 벗어 버리고
콩 이파리들이 너울대는 소나기속에
앉아 있고 싶다, 늘 그렇듯
찌는 듯한 더위 속 이 땀의 세례를
싫어하지도 피해본 적도 없다
있다가 산그늘이 내리면
산이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기 마련이고
금세 너울너울 하루해가 저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조금은 서글펐다
뙤약볕 속에, 축축 처지는 콩 이파리들 속에
오십팔 년을
그 중의 일 년을
또 그 중의 한 해 여름을
무연하게 견디는 것이 그의 버릇이긴 해도
마냥 이렇게만 있어야 하는가?

달이 밝은 날은 달빛 속에서
혼자서 있었던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없으면 저 콩들이 외로울 거라 생각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차마 어쩌지 못해
이렇게 무심한 듯이 바라보는 것이다

*일기- 해마다 콩밭 매는 것은 나한테 주어진 순례 같은 과정이다. 조금 조금씩 있는 다른 작물의 김매기는 아내와 함께하면 일찌감치 끝이 나는데 그러는 사이 콩밭은 산 같이 풀이 자라고 날은 말할 수 없이 더워진다. 김을 매려고 콩밭에 앉으면 삽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땀으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차마 아내에게 함께 매자고 할 수 없다. 산속이라 그런지 모기는 또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그러나 이것도 고행인 듯 참선인 듯 땅에 무릎을 꿇고 몸을 던져 한발 한발 매 가다보면 땀과 눈물과 고통이 어느 임계점에 다다른 순간 역설적이게도 희열로 바뀌는 것이다. 땀을 흘려도 덥지 않고 손톱이 닳아도 아픔을 모르고 정신은 하얗다 못해 투명해 진다. 그 지점에서 항상 시를 얻었다. 결국 내 농사라는 것은 올해도 이렇게 시 농사일 뿐 농사 그 자체는 참으로 보잘 것 없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이 농사가, 이 땅이, 결국은 내 마음 공부의, 시 공부의 순례지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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