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이 지나도록 출발점에만 서 있는 대통령

사르트르는 그의 소설 <구토>에서 오후 2시 무렵을 어중간한 시간이라고 했다. 무얼 시작하기에도 그렇거니와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기엔 어쩐지 눈치가 뵈는 것이다.

얼마 전 반환점을 돌아선 ‘외로운 마라토너(?)’의 입에서도 오후 2시와 유사한 29%가 나왔다.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 29%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듯 열변을 토해냈다. 29%짜리 대통령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가 그날의 항변이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년 전, 이름 석 자만 대도 알만한 전국의 검사들을 불러놓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냐’며 제법 여유를 부리지 않았던가.

그랬던 대통령이 조급증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설익은 시나리오 한 편을 들고 연기를 지피는가 싶더니 마침내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연정론’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두 해 남짓 지켜본 파트너는 그가 내민 연정의 손을 단호히 거절하고 말았다.

그동안의 행보를 지켜본 결과 도저히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요, 도무지 당신이라는 사람한테서는 믿음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 대표의 고백이다. 이런 마당에 누군들 29%짜리의 연정과 손을 잡을 수 있으랴. 그동안 한솥밥을 먹어온 열린우리당 의원들마저도 도대체가 대통령의 속내를 모르겠다며, 이제 더는 나라를 들쑤셔대지 말아달라며 성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요즘 대통령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마침표를 찍기가 쉽지 않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투기꾼들의 언변처럼 대통령의 말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화법마저 달라졌다고 할까. 간단명료했던 그의 화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그렇거니와 도발성으로 인해 괜한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어떤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노림수를 두는 건 아닌지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지난 8월 25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대통령은 “권력을 내놓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하였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건 입만 열었다하면 ‘못해먹겠다’는 발언이다. 만에 하나 한 가정의 가장이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그와 같은 실언을 시도때도 없이 남발한다면 분명 그 가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 매일 같이 한숨이 터져 나올 것이고,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막말로 콩가루 집안으로 돌변해 있을 것이다. 아니다. 하나가 더 남았다. 가장인 나는 잘 한다고 하는데 아내더러 자식들더러 그 마음을 몰라준다며 다그친다면 그건 어리광을 넘어 독재의 다른 이름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자신의 임기동안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대통령의 심경을 모르는 바 아니다. 허나 민심은 천심이다. 그 어떤 ‘주의’와 ‘사상’도 이것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대통령은 분명 혼자서 길을 갔다. 함께 가야 할 길을 버려두고 그 길을 자처했다. 1등을 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오후 2시와 같은 29%를 얻기 위해서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민 대다수는 자나깨나 안정을 바라고 있으나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연정의 깃발을 들고서 2년 반이 지나도록 출발점에만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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