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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울타리를 치는 영국을 바라보며
  • 황재근(전 부안독립신문기자)
  • 승인 2016.07.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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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국민투표를 통해 현실화됐다. 전 세계 경제와 정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당장 영국의 화폐인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각국에서는 제각각 자신들의 손익표를 계산해보기 바쁘다. 이게 이역만리 한국 땅과 무슨 큰 관계가 있겠는가 싶지만, 한국 주식시장이 폭락한 것을 보면 또 그리 먼 일만도 아니다. 이 세계사적 사건을 두고 이미 많은 의견들이 오고가고 있다.
브렉시트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바로 이민과 난민 문제였다. EU통합 이후 국경이 사라지면서 영국에는 수많은 동유럽, 남유럽의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중동의 위기가 심화된 이후에는 난민들의 물결이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잠깐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자. 이민자들이 저임금에 노동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난민들과 복지를 공유하면서 내게 돌아올 혜택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범죄와 테러 뉴스가 계속 인터넷과 TV로 쏟아져 나온다. 이들에게 이민자를 불법적으로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자본가들의 책임을 말하거나, 오래전 제국주의 정책으로 중동의 구조적인 갈등을 가져왔던 선조들의 책임을 말한들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까? 인도적인 동정, 윤리적인 올바름으로 생계의 각박함을 이길 수 있을까?
반면 이를 이용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쉽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는 너무 간단히 외부인에게, 약자에게, 소수자에게 화살을 돌린다. 저들 때문에, 저들만 아니면 마치 다시 낙원이 올 것 같은 환상에 너무 쉽게 빠진다.
20세기 말부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경을 없애는데 안간힘을 기울여온 이들이 이제 다시 가면을 바꿔 쓰고 전 세계에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영국이 바다를 경계로 다시 대륙과 선을 그었고, 미국의 유력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세우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온 유럽에 반 이민, 반 난민 정서가 점차 더 확산되는 추세다.
남의 이야기만 같다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 이른바 ‘단일민족’이라는 허울로 우리는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운 듯 살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외모와 언어가 확연히 다른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들의 문제는 오히려 나은 편이다. 요즈음 차별의 가장 큰 대상은 중국동포들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 곳곳의 저임금 노동력을 거의 충당하고 있는 그들에 대한 유언비어와 왜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일베’를 필두로 한 호남차별과 여성차별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쏟아져 나온 것처럼, 인종차별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외부인을 향하는 우리의 칼날은 본질적으로 ‘무임승차자’에 대한 배격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뤄놓은 것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저들’에 대한 불만이다. 이는 정의롭고 공정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을 말해보자. 국경을 열고 이민자를 받아오는데 주력했던 이들은 바로 기득권세력이다. 임금이 싼 곳에 공장을 짓는 것으로는 부족해 국내에서도 더 싼 노동력을 부리기 위해 아무런 완충도 없이 이들을 받아들였다. 이 화살을 왜 외국인노동자, 이민자, 난민들만이 덮어써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울타리를 치고 우리끼리 산다면 나아질까? 아니다. 이제 우리 일자리를 앗아가는 것은 외국인노동자, 이민자가 아니라 기계다. 점점 더 많은 영역이 기계로 대체되고,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무인자동차가 다니는 세상에 버스, 화물, 택시기사들은 설 곳이 없다. 3D프린터가 물건을 만들고 집을 짓는 세상에 생산노동자, 건설노동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무직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2014년 페이스북이 190억달러(약 21조원)에 인수한 왓츠앱이라는 회사는 사용자가 4억5천만명에 이르지만 직원은 겨우 55명이다. 고용 없이 창출되는 부는 날이 갈수록 더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 책임을 왜 외국인노동자, 이민자, 난민들만이 져야만 하는가.
이 악순환의 구조는 자본가들에게도 악몽이 될 것이다. 소득이 없는 이들은 소비를 할 수 없고 소비가 없으면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오는 논의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일자리를 통해 소득을 배분할 수 없으니 국가가 그 소득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받는 기본소득은 우리가 아는 상식에서는 분명한 ‘무임승차’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배격하는 외부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임승차’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황재근(전 부안독립신문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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