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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세상일에는 순서라는 것이 있다. 바늘허리 못 맨다는 말처럼 바느질을 하려면 우선 바늘귀에 실부터 끼워야 하는 법이고, ‘가’라는 글씨를 쓰려면 ‘ㄱ’을 먼저 쓰고 ‘ㅏ’를 써야지 ‘ㅏ’부터 쓰고 ‘ㄱ’을 쓰면 ‘ ’ 또는 ‘ㅏㄱ’이라는 해괴한 모양이 되고 만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씨부터 뿌려야 하고 후세를 도모하자면 우선 사랑을 나누어야 하듯 이는 곧 자연의 섭리와도 닿아 있다. 그러니 세상만사 순리를 거스르고서 잘되는 꼴 보기가 힘든 까닭이다.
부안군청이 ‘야한구경’이라는 구도심 활성화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야한 구경꺼리가 있나 했더니 밤 야(夜) 아홉 구(九)자를 써 밤에 보는 아홉까지 경관이란다. 이름하여 신석정문학관의 ‘문학이夜’, 젊음의 거리 ‘청춘이夜’, 부안상설시장의 ‘시장이夜’, 물의 거리 인근 ‘물고기夜’, 목원웨딩홀 앞 소공원 ‘정원이夜’, 매창공원 ‘사랑이夜’, 서림공원 편백숲 ‘편백이夜’, 고마제 저수지 ‘호숫가夜’, 신운천의 ‘별천지夜’가 그것들이다.
부안군청은 앞으로 각각의 ‘야경’에 걸맞은 독특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개발하고 작은 축제를 벌이는 등 관광객을 끌어 모으겠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민간인으로 구성된 군정참여위원회까지 발족됐고 콘텐츠 개발을 위해 몇 차례 회의도 열렸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부안군청의 의도대로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앞서 말한 일의 순서에 입각해 보면 앞뒤가 바뀐 게 아닌가 싶어 께름칙하다. 그러니까 각각의 야경에 이미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투입해 조경공사를 하고 고가의 조형물과 조명시설을 설치했거나 할 계획인데, 정작 그 안에서 뭘 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다. 일테면 색다른 그릇을 사놓고 이제부터 무얼 담을까, 머리를 싸매는 꼴이다.
순리를 따르자면, 그릇(하드웨어)은 쓰임(소프트웨어)이 있을 때 최소한의 비용으로 구입하는 게 옳다. 말하자면 위에 열거한 각각의 장소가 가진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 전래 놀이, 고유한 스토리 등을 두루 평가한 뒤 시범적으로 운용해보고 가능성이 보일 때 차츰 차츰 예산을 투입해 시설을 확장하는 것이 순서라는 말이다.
이는 마실축제도 마찬가지다. 부안군청이 ‘국내 최초 거리형 축제’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이태 째 4~5일씩 무대뽀로 도로를 막고 있지만, 정작 마실축제 하면 떠오르는 핵심 콘텐츠는 아직 없다. 이 역시 순서에 입각해 보면, 부안 군민들이 자랑할 만한 대대로 즐겨온 놀이가 있거나, 또는 누군가 획기적인 콘텐츠를 발굴했는데 막상 판을 벌이자니 도로 수백미터를 막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설 때 주민 설득을 거쳐 실행하는 것이 옳다. 일단 도로부터 막고 그 다음에 뭘 하지? 고민하는 발상은 순리를 따르는 자세가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청자박물관이나 갯벌생태공원라는, 거액을 들여 건물부터 올려놓고 콘텐츠가 없어 허구한 날 공을 치고 있는 훌륭한 전례를 겪었음에도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실수가 반복되면 고의다.
하긴 최근엔 더 한심한 일도 벌어졌다. 부안군청이 옛 시계탑 삼거리에 새로운 시계탑을 세운다면서 10억원의 예산을 세웠고, 의회는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이를 통과시켜줬다. 그런데 10억원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건지 비용추계서도 없고 설계도도 없다. 오는 10월에 열리는 정명600주년 기념식에 맞춰 시계탑을 완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게 주무부서의 설명인데, 그야말로 바늘 허리에 실 매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이 무슨 책을 살 것인지 정하지도 않고 책값부터 내놓으라고 하면 어느 부모가 선뜻 내 줄까. 그것도 보통 아이들 책값은 10만원인데 뭔가 획기적이고 특별한 책을 사겠다고 한 백만원 쯤 달라고 떼를 쓴다면? 무슨 책이냐니까 그건 최선을 다해 고르고 있으니까 나중에 보면 안다고 우긴다면?
마지막으로 하나 더. 최근 부안군청 공무원 3명이 줄포만 해안체험탐방도로 일괄하도급 논란과 관련해 공갈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논란이 불거진 이래 압수수색 등 10여 개월간의 지리한 수사 과정에서는 물론 부하직원의 기소 시점까지도 김종규 군수는 묵묵부답이다. 군수가 어떤 자리인가. 700여 공무원을 지휘 감독하는 군정의 최고 책임자다. 그렇다면 김 군수는 마땅히 사건 초기에 자체 진상파악을 통해 군민에게 입장을 밝히고, 관련자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업무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일의 순서요, 지엄한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일에는 순서가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명백히 드러났듯이 순서를 거스르며 무리를 하는 순간 민심이 떠나는 것, 그것 또한 순리다.

우병길 편집국장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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