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과서에서 4.19 의거(지금 ‘혁명’이라고 제대로 이름 붙여졌지만, 한 때 군사정부는 ‘의거’라고 낮춰 불렀다)를 배울 때, 동화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교과서 흑백사진 속에서 까까머리 중학생,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이 뭐라고 외치다가 굳어버린 사람들처럼 나왔다. 어린 시절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 5.18 광주의 현장 사진을 봤다. 생생한 칼라 사진으로 핏빛으로 물든 주검들, 총검에 흉측하게 난자당한 주검들, 끝없는 주검들, 그 주검을 품에 안고 절규하는 사람들,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 공포심과 결기가 동시에 보이는 표정의 사람들, 이런 사진들을 보고 온 몸에 돋는 소름과 슬픔, 피 끓는 분노를 체험했다.
그 뒤에 다시 알게 된 4.19는 엄청난 항쟁이었다. 경찰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국민들의 편에 서지 않고, 독재자의 명령을 받들고 발포를 했다고 한다. 그 때 희생된 분들이 지금의 4.19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권력자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국민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국민들은 독재자를 재판대에 세우려 했다. 그러나 비겁하고 흉악한 독재자는 쥐새끼처럼 해외로 도피해 버렸다.
국민들은 잠시 꽃 같은 민주시기를 보냈다. 장면정부는 엄청 소란스러웠지만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진정한 민주정부였다. 공무원들도 자발적으로 국가의 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라는 것도 장면정부가 수립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친일파 세력들이 군사 구테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 꽃 같은 시절을 '무질서의 시대'로 각인시키는 작업을 한다. 생각해 보라. 사실 박정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가 경험했던 것은 천황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대한민국의 독립군들을 죽이는 경험밖에 없었다. 그가 유능했던 영역은 국민을 억압하고 속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18년의 저주에 걸린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를 아직도 존경하는 인물로 뽑고 있다.
그런데 참 다행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결과 말이다. 이제 국민들은 거대한 미몽에서 깨어나고 있다. 박정희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박정희의 딸 박근혜대통령이 박정희의 환상을 깨뜨리고 있다. 18년의 저주를 단 3년 만에 박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리 오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박정희의 저주는 무엇일까?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늘 질서를 강조한다. 소란스러움을 ‘무질서’로 낙인을 찍고, 자신의 명령체제를 ‘질서’로 내세운다. 그런데 아니다. 이게 바로 저주였다. 민주주의는 원래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한 사람의 왕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백성을 대표해서 통치하는 데 어찌 조용할 수 있겠는가? 원래 소란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소란스러움은 뜨거운 에너지였던 것이다.
나의 생각은 늘 부안으로 돌아온다. 부안에서 일어난 그 뜨거운 날들은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 위대한 투쟁을 ‘광기’와 ‘치기’로 몰아가려는, 혹은 ‘언급하지 말아야 할 어떤 것’으로 묶어두려는 힘들이 있다. 그건 아니다. 그건 투쟁이었고 축제였다. 진정한 축제는 바로 그런 것이다. 술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불의에 분노할 줄 알고 떨쳐 일어났던 힘들이 소란스럽게 뒤엉키던 것이 바로 진정한 축제였던 것이다.
애타게 그 사람을 기다린다. 그 뜨거웠던 부안의 에너지를 다시 정확히 자리매김 할 그 사람, 그 사람을 오늘도 기다린다.

신종민/산들바다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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