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꽃구경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난 교실에서 숨죽이며 중간고사 시험지를 받아 들고 끙끙거리며 씨름하고 있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문제풀이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한군데에서 색다른 난관에 부딪쳤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모르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택지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시험감독 선생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정답이 없으면 가장 정답에서 먼 것부터 제외하고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을 선택하라”이었다. 그렇게 시험은 치러졌고 그 후 엉터리 문제를 출제한 선생님의 궁색한 변명과 변칙적인 해법이 이어졌다.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땐 그럴 수도 있었다.
난 또다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엉터리 선택지들로 채워진 시험지를 풀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답부터 제외시켜 나가는 과정을 되풀이 해야만 한다.
그나마 정당투표는 최선의 선택이 가능하기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런 인물이라면 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위해 노력해 줄 수도 있겠다. 이런 정책이라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의 이웃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행복해 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 원래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의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진입장벽을 더욱 더 높고 견고하게 구축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만 열심히 할 뿐이다. 정작 국민의 편안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의민주주의의 성패여부는 국민들의 뜻이 얼마나 정치에 잘 반영되는가에 달려있는 것 아겠는가? 하지만 왜곡된 선거제도로 인해 너무도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2012년 창당한 녹색당은 그해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에서 2%의 득표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당법에 따라 정당등록을 취소당하고 4년간 같은 당명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녹색당은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014년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을 내려 녹색당 당명을 되돌려 주었다. 현재 녹색당은 3% 득표를 목표로 정당비례대표에 등록을 마쳤다. 바다의 소금물이 썩지 않는 이유를 3%의 소금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녹색당은 30년 원내에 1명의 의원이 진출하여 30년이 지난 후에야 보수계열의 총리인 메르켈로부터 더 이상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겠다는 선언을 받아냈다. 소수당의 입장에서는 의원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의제가 제도권 정치 내에서 논의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35%의 정당지지율을 가지고 전체 300석의 국회의원 의석수중 과반수이상을 차지하고 지금 같은 하나의 선거구에서 다수의 야당 후보가 나오는 구도가 형성된다면 어부지리로 2/3이상의 의석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이런 선거제도는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전국적으로 1%의 지지를 얻는 정당은 1%인 3명의 의원을 가지는 것이 정의로우며 50%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것이 제대로 민의를 반영한 의회의 구성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소수당을 중심으로 정치학자, 시민사회단체들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고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현행 선거구의 헌법불합치 판결과 맞물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결국 선거법개정은 대통령관심법안 통과를 위해 볼모로 잡혀 있다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장고 끝에 악수”, “개정이 아닌 개악”이란 평가와 함께 막을 내렸다. 지역구 국회의원 수는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여 국회의원 수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선관위의 권고와 양심 있는 학자, 정치인들의 제안을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였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전체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유지하고 사표를 방지할 수 있는 비례대표국회의원의 수를 대폭 늘려서 지금의 16%에서 50%, 즉 의원들의 절반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온갖 특권의 대한민국 국회에서 특권 없이 일하는 스웨덴 국회’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행 국회의원 수를 유지하거나 줄이는 것은 그들의 밥그릇을 더 확실히 챙겨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소수정당들의 국회에 입성하는 원내정당으로서의 위치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제1야당이나 제2야당을 꿈꾸는 정당도 지지도만큼의 의석수를 얻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이런 불합리한 제도판을 깨뜨려버리길 원하는 모든 세력들은 연대해야만 한다. 그것이 이번 선거 전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선거 이후에라도 본격적인 연대와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다음선거를 준비해야만 한다.
비례대표의 확대 문제뿐만이 아니다. 19세로 되어있는 선거권의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문제(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 될 수 있는 나이는 18세이고 오스트리아의 선거연령은 16세이다), 만 25세로 되어있는 피선거권의 문제(투덜대는 대신 행동하라고 외친 독일의 안나 뤼어만은 당시 19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고 15세 때 정당에 가입했다), 소수당들의 정당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의 과도한 제한 문제(선거 기간 동안 전국에서 등록된 34명의 선거운동원만이 활동할 수 있다. 스피커의 사용은 금지),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화하는 의무투표제(실제로 호주에서 실시되고 있고 2010년 선거 투표율은 93%이었다. 반면 우리나라 지난 총선 투표율은 52%에 불과했다)에 대한 논의 까지 국민들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질 수 있는 그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터져 나와야만 한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대한 역사적 발전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부자, 가난한자, 귀족, 평민 누구나 같은 한 표의 보통선거가 도입되었고,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되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연령은 점차 낮아졌으며 이제는 그 방향이 국회구성의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국민행복지수 1위 덴마크는 원내정당이 8개라고 한다. ‘다양해야 행복하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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