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평, 상민 형제가 도와주신 분들과 찾아오신 손님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짐하고 있다.
▲ 흥을 돋우며 집들이의 시작을 알리는 풍물놀이패. 뒤에 보이는 주택이 상평, 상민 형제의 새 집이다.
▲ 상평, 상민 형제의 2층 공부방.
▲ 대한적십자 회원들과 주민들이 집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상평이와 상민이네 집들이

1층은 욕실과 부엌, 세탁기 등이 아담하게 배치되어 있는 생활공간이다. 벽면을 타고 연결된 2층으로 올라가니 서너 명이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거실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향의 침실이 나오는 휴식공간이다. 1, 2층 합쳐 열 네평의 새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 주인공은 이상평(18세), 이상민(16세)군이다.
오늘은 평·민이의 보금자리 집들이가 있는 날이다. 동네(백산면 봉서마을-이장 우종대) 어르신들은 휴지를 한 다발씩 사들고 축하를 오셨고, 마을 부녀회장님과 적십자회원들은 팥죽을 쑤고 상을 차렸다. 집들이 사회를 맡은 이해범 아름드리지역아동센터장은 오늘 유난히 바빠 보였다. 박천호 군의원과 김춘진 국회의원, 노점홍 부군수와 문숙자 면장, 박창구 주민행복실장 그리고 집을 시공한 호목회(호남권목조건축시공사모임-회장 조한철) 회원들, 형제들이 다니는 백산중(교장 이중배), 고등학교(교장 정하영)선생님들까지 내외빈들이 자리를 메웠다.
집들이에 이렇게 많은 내외빈들이 모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냥 평범한 집들이가 아니라 마을과 지역이 모두 한데 모여, 갈 곳을 잃은 지역 청소년의 보금자리를 만든 뜻 깊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용접기술자였던 상평, 상민군의 아버지는 작년 11월 15일 백산면 금판리 앞길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300만원 보증금에 월세 15만원짜리 셋집에 살던 상평군 형제는 졸지에 갈 곳을 잃었다. 달리 벌이가 없는 청소년들로서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형제는 다른 곳이 아닌 백산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고 싶어 했다. 형제가 다니던 지역아동센터 이해범 센터장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이들의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이장님과 지역사회 어른들과 머리를 맞댔다.  
처음에는 백산고 인근에 있는 빈집을 얻어 수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빈집 수리비는 생각보다 견적이 많이 나왔다. 그럴 바엔 이동식 주택을 구입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 이해범 센터장이 자신의 집 한 켠에 공간을 마련하여 이동식 주택 구입을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자재와 관련한 협의를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명성우드 조영찬 대표를 만났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조 대표는 그럴 것이 아니고 여럿이 힘을 합쳐 집을 지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조영찬 대표는 백산고 10기 졸업생으로 지역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3년 전에는 백산고 학생들에게 야식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명성우드가 자재를 대고 호목회 회원들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 집을 지었다. 집을 짓는 동안 마을어르신들과 백산면주민자치회(위원장 정재원), 부안성당, 농협, 부안경찰서, 부안라이온스클럽에서 장학금을 모아 전달했고, 행정은 각종 복지와 수도공사 등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지역 공동체가 다함께 나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떻게 살아가나, 어디로 가야하나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센터선생님들과 지역 어르신들 그리고 학교 친구들이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해서 어려운줄 모르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동생 때문이라도 얼굴 펴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에 집을 짓게 되면서 모든 분들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을 받습니다. 이다음에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면 열심히 기부를 해야겠어요. 동생도 제가 잘 보살필 겁니다”
상평군은 이번 일을 통해 부쩍 커버린 듯하다. 듬직한 말투에서 어른스러움이 물씬 묻어난다. “저의 꿈은 로봇과학자입니다. 아버지가 용접기술자였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 것 저 것 기계나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쪽의 일을 하고 싶어요”
상평, 상민 형제는 이 집에서 각자의 꿈을 키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지역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형제들의 마음에도 든든한 집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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