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대통령 선거를 막 시작했다. 지난 2월 초 아이오와주 경선을 시작으로 3월 첫째 둘째 화요일인 3월 1일과 8일 이른바 ‘수퍼 화요일’을 거쳤다. 본선은 11월 8일이므로 아직 8개월이 남았지만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자 자기 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을 치르는 중이다.
미국의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겠지만 한국과 미국이 밀접한 관계이기에 우리로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개성이 뚜렷한 후보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국외자이지만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선 민주당에서는 오래전부터 대세로 굳어진 힐러리 클린턴의 아성을 뿌리 채 흔들고 있는 버니 샌더스가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샌더스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대선후보 지지율 1%에 불과한 여러 명의 상원의원 중 한명이었다. 40년 동안 무소속으로 정치를 해오다 지난해 4월 대선에 나오려고 민주당에 입당했다. 입당한지 1년이 안된 샌더스가 민주당 내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현상이 우리에게는 어색하면서도 참신하다.
공화당은 민주당보다 더 복잡하다. 경선 전부터 여과되지 않은 막말과 정제되지 않은 행각으로 자격시비를 불러일으킨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재벌이다. 현재 경선 1위를 달리고 있다. 후보경선 2위와 3위는 테드 크루즈와 마르코 루비오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각각 46세와 45세로 젊다. 크루즈는 히스패닉으로 분류되는 라틴계 혈통이다. 루비오는 쿠바계 이민 2세다. 보수적인 공화당 내에서도 극우에 가까운 사람들이라지만 와스프(WASP) 전통이 강한 공화당으로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미국사회의 변화가 새삼스럽다. 참고로 와스프란 백인(White), 앵글로 색슨계(Anglo Saxson), 개신교 신자(Protestant)의 머리글자를 모은 약자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만이 미국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물론 오바마처럼 예외도 있다. 1961년에 취임한 케네디는 카톨릭 신자였다. 와스프의 전통에 금이 가기 시작한 첫 사례다. 현재 공화당 경선 3위인 루비오도 카톨릭 신자다. 와스프의 전통이 민주당에 비해 좀 더 강한 공화당에서 조차 일각에서 무너지고 있는 현상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대선 과정을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 바람이다. 지금까지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대선 후보는 정치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거나 명문가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치적 경력이 일천한 졸부 출신이다. 돈이 많다는 것 외에는 대통령으로서 여러 면에서 자격미달에 가깝다. 미국의 보수층 수준이 천박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 볼 수 있다. 둘째는 미국사회에서 소외계층 또는 상대적 약자에 속하는 히스패닉과 쿠바 출신인 크루즈와 루비오가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와스프에 속하는 샌더스가 오히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과 비교해 보면 역설적인 현상이다. 미국 대선 과정에는 역설적인 현상이 더 있다. 흥미로운 사실 세 번째다. 진보적인 샌더스와 보수적인 힐러리의 지지층이 엇갈린다. 샌더스는 주로 백인 젊은 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 반해 소외계층인 흑인과 저소득층은 샌더스 보다 보수적인 힐러리를 더 많이 지지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재벌과 부자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저소득층과 농어촌에서 더 높은 역설적인 현상과 비슷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샌더스 돌풍이다. 샌더스는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자처한다.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샌더스가 골수 자본주의 나라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큰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 이번 미국 대선과정에서 가장 큰 역설이다. 공화당의 후보와 경쟁력을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힐러리보다 샌더스가 더 높게 나온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공화당 후보들과 큰 차이가 없는 힐러리보다 사회주의자 샌더스를 더 많이 지지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양당의 대선 후보로 누가 결정될지 모른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다만 버니 샌더스 같은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 그의 당선 여부를 떠나 미국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강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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