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두려운 것은 핵보다 대립과 갈등

지난 1986년 이후 무려 7차례나 시도했음에도 그때마다 수포로 돌아간 핵폐기장 부지선정 작업에 전국이 홍역을 앓고 있다. 안면도, 굴업도, 부안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주민적 저항에 골 깊은 상처만 남겼던 핵의 악령이 또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유치신청이 예상된다며 사업추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뭇 자신감마저 내비치고 있다.

군산이 지난 달 18일 가장 먼저 지방의회를 통과하더니, 이에 질세라 경주에서는 8월 12일 동의안이 가결되기 바쁘게 16일 서둘러 유치신청을 마쳤다. 울진과 포항은 의회에 상정해놓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영덕과 삼척은 여론조사를 통해 신청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정부와 언론은 이들 6곳이 유력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부안에서도 일부 찬성의원들이 의회동의안을 상정하며 19일-22일까지 임시회를 열어 처리하겠다며 벼르고 있으나 누구 한사람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부안의 정서는 폭풍전야와도 같다. 왜 이리도 못살게 하는지,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 스스로도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음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8월 말로 유치신청이 마감되면 산자부는 신청지역을 대상으로 부지의 지질이나 지반구조가 양호한 지, 안전성 여부와 폐기물 운반에 따른 교통여건, 경제성 등 사업추진의 적합성을 9월 15일까지 평가한다. 여기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지역은 11월 22일까지 주민투표를 실시하는데 이때 2곳 이상의 지역이 경쟁을 할 경우 주민 수용성, 즉 찬성율이 가장 높은 곳이 최종후보지로 결정된다.

어떻게 보면 다소 까다로운 절차로 포장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앞의 안전성과 여건의 적합성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활성단층인 양산단층대에 있는 영덕과 포항, 경주에서도 안전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도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군산은 각종 미사일과 폭격기로 들어차있는, 미군 공군기지가 눈앞에 있는 비응도가 해당 부지이다. 또한 울진은 지난 3차례에 걸쳐 주무 장관이 핵폐기장 추진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공문으로까지 약속하지 않았던가? 결국 주민투표에 따른 찬성율이 최종부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에서도 부안은 이미 물 건너갔음을 잘 알고 있다. 혹시 주민투표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전국에서 가장 낮은 찬성률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물론 핵폐기장이 들어올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주민투표를 다시 하게 될 경우 다시금 지역은 극심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주민들 사이에 불신과 반목, 감정의 대립은 극에 달할 것이고, 결국 지역 공동체는 산산조각 난 채 치유불능의 상태로 치달을 것이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민의 의견을 묻자는 무리들이 있다. 군수와 일부 의원들이 그들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임기동안 보장된 권력의 힘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주민의 고통과 지역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다. 또한 정부는 이를 방조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한계와 폐해를 핑계 댈지 모르지만, 무책임과 무능력을 부안에서 계속 드러내고 있다. 민심 수습용으로 이러저러한 사면복권 조치와 경제회생 지원을 언론에 흘리더니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뒤통수를 치고 있다.

부안 주민의 피와 눈물로 가르쳐 준 교훈에 대하여 여전히 눈 감고, 입 막고, 귀 닫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전국을 돌며 주민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단지 해당지역 주민들만이 그 대상은 아니다. 군산 핵폐기장 유치는 인근 충남지역에도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서천을 예로 들면 ‘어메니티(Amenity) 서천’을 지역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정하고 상당기간 준비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어메니티란 지역의 환경과 문화 등을 중심에 두고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친환경적으로 농업, 어업 등 지역의 고유한 자원에 기반하여 다양하게 지역발전의 모델을 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불과 7.5km 떨어진 군산 비응도에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하니, 뛰다 죽을 노릇이 아니겠는가?

경주도 예외는 아니다. 인근의 울산은 지금 죽을 지경이다. 남으로는 고리 핵발전소가 위치하고 (최근 승인이 난 신고리 핵발전소에 울산의 상당지역이 편입되었다), 북으로는 경주 핵폐기장 예정부지인 양북면이 인접해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신고리, 신월성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된다면 이 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소가 가장 밀집되는 곳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유치경쟁의 실내용이다. 마치 2003년 부안에서도 신시도에 할 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유치하자며 구실을 붙였듯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서천에서도 울산에서도 이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울진과 영덕, 삼척의 접경지역이 핵폐기장 부지로 추진되고 있지만 해당지역 주민들은 ‘차라리 우리가 유치하자!’는 목소리보다는 ‘이 땅 어디에도 핵폐기장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핵마피아들의 어마어마한 지역 난도질 앞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세상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 떡 주무르듯 하는 것 같지만, 절대 다수의 민중이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가고 있지 않은가?

이들이 외로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받은 품을 갚을 때가 오고 있다. 위대한 부안 군민이여! 우리 다시 한번 희망을 노래하자! 반핵의 노랑 물결로 부안을 넘어 군산으로, 동해안으로 넘실거리게 하자. 저들이 강요하는 고통과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과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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