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칼럼
“누가 부안 사람인가?”

부안에서 태어나 30년을 타지에 살다 돌아온 사람과 타지에서 태어나 30년을 부안에서 살아온 사람 중에, 부안 사람들은 누구를 ‘부안 사람’이라 생각할까?
평소 같으면 술안주꺼리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선거철이 되면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타지 태생으로 부안에 터잡고 사는 사람보다 부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부안 사람으로 대우해 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부안을 삶의 기반으로 삼고 부안 사람을 이웃으로 여겨온 다른 지역 출신들이 ‘부안 사람’이 아닌 ‘타관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시간이다. 그들로서는 절망과 좌절을 맛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런 관습이나 행태가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고치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왜 사람들은 그런 기준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관습의 탄생에는 다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지인(知人)’, 즉 ‘사람을 아는 것’이라 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늘 함께 지내는 사람이야 겪어 본 바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지만, 동네를 벗어나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도대체 어떻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동양에서는 ‘유세’라는 오랜 전통이 있다. 말을 조리 있게 해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 유세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세 치 혀로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세가 발달하면서 많은 ‘거짓말’들이 나오게 되고, 이제는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어떤 정황적인 요소들을 찾게 된다. 동양에서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하는 관상학이나, 사주로 사람을 판단하는 명리학이 발달한 이유는 그 세 치 혀를 믿을 수 없어서 절대 바꿀 수 없는 어떤 것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문들이 진짜 가능한지는 따로 생각하기로 하고, 이런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점만은 확인하고 넘어가자.
이런 관점을 지역 사회로 돌려 생각해 보자.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까? 쉽지 않다. 토론을 통해서 그 사람 말의 진실성과 합리성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근거를 찾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그 가문을 살피는 것이다. 소위 ‘뉘 집 자식이냐?’는 질문이 그것에 해당한다. 이것은 왤까? 옛날에는 학교 교육보다 가문에서의 교육이 더 엄격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무서워서 허튼 짓을 못했다. 그래서 어떤 가문인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을 파악하는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학연, 지연, 혈연 모두 어떤 사람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전제로 그것이 너무 어려워서 그 정황적 근거를 찾으려는 발버둥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용해 먹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그것을 동원해서라도 사람을 파악해야만 하는 민초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발버둥’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연, 학연, 혈연이라는 전근대적인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는커녕 그것을 이용해 먹는 ‘후보자’들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은 가문도 사라졌고, 집성촌도 사라졌고, 개별적인 개인들의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그 개인은 개인의 활동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바뀐 세상에서 개인을 제대로 내세울 수 없을 때, 아직도 과거의 흔적만을 이용해서 자신을 포장하려고 한다면 그런 작태야 말로 비판의 대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누가 부안 사람인가?’라는 주제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탓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으로 공직자가 되면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공적 활동의 경험’을 보여줘야 한다. 이 지역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 성공 실패를 떠나서 자신의 활동 내역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일상적으로 부안의 공적인 문제들을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지금처럼 선거철에 잠시 나와서 기웃거리는 행태를 보이는 후보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금의환향이라는 오랜 신화적 전통에 기대서 지역민을 현혹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성남의 이재명 시장이 시립의료원 건설 활동을 통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듯이, 부안에서도 부안의 현안을 붙들고 평소에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시민운동이나 정당 운동을 활성화하는 해야만 이런 전근대적인 인식을 벗어날 수 있지 전근대적인 인식을 비판한다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묻자! ‘누가 부안 사람인가?’ 그것은 그가 부안 출신인지, 타지 출신인지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부안을 위해서 부안의 공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해 왔는지, 그 활동 내역서를 제출하여 신망을 얻는 사람이 바로 부안을 대표할 부안 사람인 것이다. 이제는 이런 사람이 되자!

신종민 기자  newkey03@hanmail.net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종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