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영

가위 바위 보. 문틈으로 보이는 막내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기고 싶은지 보를 내는 작은 손바닥에 힘이 들어가 있다. 터울이 많은 오빠와 언니는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동생보다 한 박자 늦게 바위를 낸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딸은 눈치가 빨라 일부러 져주는 것을 알면 재미없어라 하기에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한다. 오히려 큰딸과 아들이 더 긴장된 모습이다.
 8살 딸아이는 언니, 오빠와 10살 넘게 차이가 난다. 아들 딸 잘 키워놓고 늦게 아이를 또 낳았다며 떨떠름하게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이유인 즉, 키우고 가르치려면 만만치 않은 경제력도 문제지만 늙어서까지 개인생활을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인 것도 같다. 더불어 요즈음 취업과 결혼, 자녀출산의 관계가 맞물려 있는 현실이고 보면 타당한 말일 수도 있다. 생명은 하늘보다 귀하다는데 경제적 현실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늦게 결혼하는 나라가 되어버렸고 저출산의 나라라는 보도를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금이야 귀여움을 독차지하지만 막내를 낳기까지는 남편과 옥신각신 했었다. 아이 둘을 키워 놓고 보니 적적하다며 하나 더 낳자는 남편의 말에 나는 늘 시큰둥했었다. 사실 아이 하나 더 낳아 기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은 아니었기에 내키지 않았었다. 급기야 남편은 중대한 선언을 했다. 막내를 낳으면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도 끊으려 했던 담배를 못 끊어 힘들어 했었는데 담배를 끊겠다니. 하지만 명분으로는 부족했다. 담배는 자신의 건강 때문이라도 끊어야 마땅하거늘 어찌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것인가. 남편의 타산적인 조건은 더욱 더 내 입을 잠그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생명을 가슴에 안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평소 아기 욕심이 많은 나는 남편의 의견에 차츰 동화되어 갔다. 제 밥그릇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도 귓가에서 맴돌았다. 무엇보다 큰딸과 아들도 아빠 편이 되어 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졸라댔다. 오히려 한 생명을 두고 저울질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행운목이 거실 한쪽에서 푸름을 더해 갔다. 영양제도 사다 꽂아주고 잎도 닦아주었다. 남편은 나무에 정성을 들여 키우는 공력이면 애를 키우겠다는 말을 내 등 뒤에 흘려놓곤 했다.
행운목은 좀처럼 꽃이 잘 피지 않는 꽃이라는데 꽃대에서 꽃이 비치기 시작했다. 점점 꽃을 들고 올라오는 꽃대가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아기처럼 이리저리 가지를 뻗었다. 대궁에 지지대를 설치했다. 꽃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아도 남편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꼈다. 당황스러웠다. 상당히 긴 세월 동안 임신을 거부한 자존심도 있고 해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임신 사실을 숨길 수만은 없었다. 기왕이면 뱃속에서부터 축복받으며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말했다. 좋아하는 남편을 보며 모질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행운목 꽃이 피는 건 행운을 가져다주는 거라며 임신을 축하해 주었다. 불룩해지는 배에 귀를 대보며 기다리던 언니와 오빠의 사랑 속에서 태어난 늦둥이 수빈이. 막내딸은 그렇게 우리 가족 곁에 행운목 향기처럼 왔다.
 언니, 오빠의 배려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보를 내어 이긴 수빈이가 좋아서 두 손을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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