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은 철과 플라스틱으로 된 벽 위로 기다란 모가지만 내밀고 있었다. 그 모가지 끝에 달린 눈깔과 주둥이가 연신 사람들을 쫓아다니다 소리 없이 뱃속의 액체를 거세게 토해냈다. 때로는 높은 곳에서 흩뿌리다가 가까이 다가온 자들을 보면 거침없이 고개를 숙여 일직선으로 쏴댔다. ‘그것’들이 토해낸 액체는 비말 근처에만 가도 재채기가 나올 만큼 독했다. 아스팔트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흘러내려가는 액체는 희뿌연 빛이었다. 보도로 올라가도 ‘그것’은 모가지를 쭉 뻗어 쫓아왔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흩어져야만 만족한 듯이 고개를 들고 그들을 내려다 봤다.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고 살도 없고 뼈도 없는 ‘그것’은 괴물이었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곳곳에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별다른 소속 없이 개인자격으로 참가했다. 사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대규모 상경집회는 축제와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평소에 허락되지 않는 공간을 점유한다. 좀 들뜨기도 하고, 이것저것 볼 것도 많고, 또 크게 소리도 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기분으로 집회에 갔다. 대열 뒤쪽의 분위기는 예상한 대로였다. 비정규직 몸짓패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는 청소년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조금씩 나가자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뒤쪽에서도 보였지만 맨 앞쪽으로 나가자 ‘그것’의 위용이 제대로 보였다. 물대포였다. 미디어로 보는 것과 정면에서 그것에 물을 토해내는 광경을 보는 것은 확실히 체감정도가 달랐다. 표정도 감정도 없는 기계가 그토록 유연하게 다각도로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어떤 면에서는 비현실적인 느낌도 들었다. SF영화에서 기계와 인간의 싸움을 보는 느낌이랄까.
차벽 바로 앞에 마련된 임시 연단에서는 진행자가 연신 사람들을 재촉했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차벽을 뚫고 광화문 광장으로 갑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비 한 겹만 입고 그 물대포 앞에 섰다가 물러서 있었다. 캡사이신 최루액의 위력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비말에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눈과 코가 얼얼해졌다. 솔직히 별다른 준비도 없는 참가자들을 차벽과 물대포 앞으로 몰아대는 집회 진행자가 무책임해 보일 정도였다. 조금 일찍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 그 안에서 보았다. 농민 백남기 씨가 직사 물대포에 맞아 중태라고. 영상도 보았다. 쓰러진 사람 위로 그 괴물이 콸콸 액체를 토해내는 모습을.
바로 공세가 시작됐다. 불법집회, 폭력집회, 폭도. 예상했지만 직접보고 온 바와 너무 달라 더 화가 났다. 어떤 금배지는 “미국은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패버린다”라고 하셨다. 직접 ‘패버리지’ 못하신 아쉬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도 그 귀한 입을 여셨다. 복면 쓴 집회 참가자들이 무려 테러집단 ‘IS'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서야 물대포를 처음 보고 느꼈던 공포 한 구석의 위화감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예전 집회에서 방패를 들고 선 전경들과 마주할 때도 공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물대포를 볼 때 느낌하고는 달랐다. 어떤 그림이 스쳐지나갔다.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만났을 때 샤워기 찬물 수압을 올려서 수채구멍으로 몰아넣었던 기억이었다. 골목 구석까지 차벽으로 둘러쳐서 갈 곳을 막고 물대포로 쏴서 잡는……. 우릴 벌레로 보는 구나. 공포와 함께 느껴졌던 그 더러운 기분은 바로 모욕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는가. 말로 해도 안 되고, 글로 해도 안 되고, 언론에 호소해도 안 되고, 서명운동을 해도 안 된다. 굴뚝에 올라가고, 광고판에 올라가고, 맨바닥에 천막을 쳐도 안 된다. 들었는지 보았는지 대꾸도 없던 그 분이 이제와 고작 꺼내신 말씀이 ‘복면을 못 쓰게 하라’라니. 하루 빨리 박멸해야 할 벌레로 보고 있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시위대의 아침이슬을 들으셨다던 전임 ‘가카’의 말씀이 시적으로 들릴 정도다.
대통령 말씀이라면 역사도 하루아침에 다시 쓸 수 있는 나라인데, 벌레 같은 시위대들 대접이야 오죽하겠는가. 방패를 붙잡고 밀치며 몸싸움을 하던 2000년대 초반의 시위는 어쩌면 인간적이었다. 광화문의 집회를 회상하면 벌레를 상대하는데 맨손으로 내려치기 찝찝하니 살충제를 뿌려대는 느낌이다. 사실 집회 한번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시당하는 게 익숙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씀 하나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저들은 우리를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
그럼 이제 우리는 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주고 싶지만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다.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가 서울에서 열린다. 모여서 그 방법을 함께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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