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멸치를 삶아야 하니까
두 시간 동안은 깨지 마

변산면 모항마을 어르신들은 이춘희 씨를 ‘새벽이 엄마’라고 부른다. 큰애 이름이 새벽이다. 이춘희씨의 하루는 남편 유영춘씨가 바닷일을 나가는 새벽 2시부터 시작된다. 남편이 1~2 시간의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춘희씨의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물메기, 쭈꾸미, 쫄복, 꼴뚜기, 숭어, 농어 등의 고기들을 고르고 나누어 어시장에 팔러갈 생선을 갈무리한다. 아침을 챙겨 먹고 부지런히 부안 어시장에 고기를 팔고 들어오는 길에 면사무소에 들러 이장회의에 참석한다. 마을 어르신들과 연관된 각종 복지, 농어업 정책들을 꼼꼼히 챙겨 전달하고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 면에 제출한다. 올해로 4년차 모항마을 이장 이춘희씨의 일상이다.  오늘은 막둥이 현성이가 수능 예비소집을 가는 날이라 더 바쁘다.
올해로 53세인 이춘희씨의 고향은 멀리 경상남도 거창이다. 명문사학으로 알려진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미루고, 일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찾고자 서울로 향했다. 간호대학을 나와 아동보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간호 조무사로 일하면서 간호대학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카톨릭 농민회에서 주최한 교육을 받고 춘희씨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탁아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84년도에 김제로 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보육일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농민운동진영은 농촌 보육사업을 중요한 활동으로 삼고 있었다. 부안에도 변산을 중심으로 농촌탁아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항, 도청, 유동 등 3곳에서 어린이집이 운영되었다.
모항에서 농민운동 지도자 모임이 있었다. 김제지역 활동가를 따라 놀러온 모항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남해 삼천포나 통영에서는 보지 못했던 서해 모항낙조는 춘희씨를 강열하게 이끌었다. 때마침 모항어린이집에서 임기가 얼마 안 남은 교사의 후임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 요청에 선선히 응한 것은 순전히 모항 낙조의 덕분이 아닐까?.
‘한 5년쯤 모항에서 어린이집 교사를 열심히 하고 원래의 꿈을 찾아가리라’했던 춘희씨의 계획은 남편 유영춘씨를 만나면서 또 한 번의 궤도수정을 겪게 된다. 때는 1986년... 유영춘씨를 통해 농촌계몽의 뭔가를 도모하려던 춘희씨의 생각은 며칠 뒤 ‘둘이 사귄다더라’는 소문으로 돌아왔고 누구의 계획이 맞았는지 모르게 그리그리하여 둘은 이듬해 8월 약혼식을 치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이춘희씨는 어부의 아내가 되었다. 당시에는 멸치나 쭈꾸미가 한번 제대로 걸렸다하면 뱃전에 바닷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어획량이 좋았다. 하루에 3~4백만원을 벌 때도 있었다. 멸치를 삶고, 젓갈을 담그고, 쭈꾸미를 철사에 꿰어 버스를 타고 부안 장에 내다 파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살림이 붙는 재미, 아이들이 커가는 재미는 피로를 잊게 했다. 요즘은 그 시절에 비하면 잡히는 양이 40% 수준 밖에 안된다니 걱정이다. 큰 배들이 위도 앞바다에서 거의 싹쓸이를 한단다. 그러니 모항 앞까지 오는 고기가 줄 수 밖에...
큰딸이 ‘새벽’이, 둘째딸이 새날이다. 민중들의 새벽, 새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막내 현성이는 허니문 베이비다. 약혼식만 치르고 살다가 96년에야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신혼여행도 그 때 갔다. 신혼여행에서 생긴 아이가 막내아들 현성이다. 큰 딸은 다섯 살 때부터 동생을 돌보고 밥을 챙겨 먹을 정도로 엄마의 바쁜 일상을 잘 이해했다. 피아노와 태권도를 가르친 것, 1년에 30만원어치의 책을 꼬박꼬박 사서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들려준 것, ‘엄마가 멸치를 삶아야 하니까 두시간 동안은 깨지 말고 자줘’처럼 모든 일상을 아이들과 이야기로 공유한 것... 밖에는(?)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주고, 제 앞가림 잘하고 있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새벽이는 여수에서 교사를, 새날이는 광주에서 사회복지사를, 현성이는 교사의 꿈을 갖고 이번에 수능을 보았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모항에서 흘러갔다. 그동안 모항도 많이 변했다.
“외로울 때가 있었어요. 가까운 친구 아니면 하지 못할 말이 있는데 모두들 너무 멀리 살고 있으니까요”. 가장 힘든 일이었단다. 조금 여유가 생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정신 없어요. 막내 졸업할 때까지는 열심히 살아야지요.” 웃음을 잃지 않는 새벽이 엄마, 새벽의 엄마 이춘희씨는 막 돋아 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물고기와 막내아들을 태우고 트럭에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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