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가 늦어진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마찬가지다. 문 앞에서 다짐 할 때 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아들 녀석 때문에 오후만 되면 걱정이 앞선다. 집에 일찍 와도 공부를 하거나 딱히 제 방을 청소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TV리모컨만 들고 설치는데도 눈에 보여야 안심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흔한 손전화 라도 하나 사 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점점 어둑해지는 창밖으로 자꾸만 눈이 간다. 이윽고 다급한 마음은 담임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오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것처럼 벼르고 벼렸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가운 마음에 냉큼 현관문으로 달려간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표정을 다잡는다. ‘엄마’ 라는 목소리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반가웠지만 아닌 척 현관문을 열었다. 문 열기 무섭게 늦은 이유에 대해 따져 물으려 했으나 입도 생각도 다물어지고 말았다. 엄마를 부르던 풀죽은 목소리만큼이나 늘어트린 고개를 들자 눈가에 눈물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울 녀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스로 반성하여 운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인데 웬 눈물인지, 생각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고 있을 때 슬쩍 팔꿈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얼 하다가 다쳤는지 벌겋게 벗겨진 피부에서는 진물이 송글거렸다. 미루어 쓰리고 아프겠다는 생각에 약상자 먼저 찾았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주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유인즉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타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팔을 움직이는 걸로 보아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 듯했다.
어릴 적 나도 아버지의 자전거를 몰래 끌고나와 타던 때가 있었다. 꿈에서도 자전거를 더 타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눈치를 봤던 것처럼 아들도 제 친구의 자전거를 조금이라도 더 타려고 서둘다가 다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들이 늘 갖고 싶어 하는 자전거를 사주고도 싶지만 사고위험 때문에 미루고 있었기 때문에 더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자전거를 배울 때는 자전거를 붙잡아 주거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를 도둑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끌고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전거를 끄는 것조차 버거웠었다. 시간이 흐르고 겨우 자전거에 올라 비틀거리는 중심을 억지로 세우며 몇 바퀴 굴러갔던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넘어질 때마다 다치기 일쑤였지만 그 상처는 중심을 잡고 굴러가는 짜릿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길가의 보리밭에 넘어지거나 담벼락에 부딪힌 날이면 눈물은커녕 창피한 마음에 이를 앙다물곤 했었다. 그런데 여자 아이도 아닌 사내 녀석이 그것도 4학년이나 되는 녀석이 징징대는 꼴이라니.
한 번은 동생을 뒤에 태웠었다. 어느 정도 중심도 잡았겠다, 마음이야 자신이 있었지만 중심은 나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비틀비틀 몇 바퀴 못가서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고슬고슬한 흙길에 넘어져 동생은 다치지 않았지만 입 속에 흙이 들어가기도 했었다. 동생도 동생이지만 부모님이 알까봐 상처들을 가리고 끙끙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내 자전거 연습은 벼이삭 여물 듯 무르익어 갔고 급기야 제법 먼 곳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동네에서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는 오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팔짱을 끼고 온몸으로 중심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대단한 묘기였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모습에 관한 한 아버지만큼 멋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를 태우고 여유 있게 중심을 잡으며 달리는 아버지. 가족을 위해 평생 중심을 잡았던 아버지의 바퀴는 힘든 기색도 없이 내달리곤 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등 뒤에 앉을 때면 편안해 하셨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중심이 되어주고 평생 자식들의 바퀴가 되어준 것을 나는 결혼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전거와 내가 하나 되어갈 무렵 나는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아버지는 들에 나갔고 어머니는 시장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 자전거 실력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싶어 얼른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이미 동구 밖에 다다른 어머니 곁에 자전거를 대령했다. 눈빛만으로도 당신을 태우려는지 알아차렸다. 그러나 동생을 태우고 가다 넘어진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멈칫거렸다. 그래도 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못이기는 척 뒤에 앉으셨다. 하던 일도 멍석을 깔아주면 못한다는 말처럼 몇 미터 못가서 넘어지고 말았다. 사실 어머니처럼 큰 사람은 태워본 적이 없었다. 풀죽어 있는 자신감이 안타까웠는지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당신의 옷을 툭툭 털며 걸어서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발길을 옮기지 못한 채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동네 오빠들처럼 핸들에서 손을 놓고 타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전거 운전이 능숙해질수록 어머니를 태우고 시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었다. 아들 녀석이 자전거를 배워 나를 태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지금도 어머니를 태워드리고 싶다.
방금 전까지 만해도 아파서 징징대던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TV 앞에 앉는다. 상처는 지금을 아프게 하지만 경험을 있게 한다. 아들을 향해 한 수 건넨다. 자전거는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 중심을 잡는 거야.
이경희(주부, 부안읍자치센터 수필창작반)
- 입력 2015.10.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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