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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탈핵교류 순회 토크콘서트 - “탈핵, 할매가 간다”
   
 

   
▲ 핵폐기장 투쟁 당시 썼던 노란 모자를 살펴 보고 있는 미토
평생을 핵에너지의 위험에서 벗어나자고 외치며 숱한 현장에서 싸움을 벌여온 할머니들이 있다. 일본인 미토 기요코(80)와 사와무라 카즈요(80). 그들이 지난 5일 부안을 찾았다.
100년을 맞은 원불교가 자리를 깔고 지역사회의 탈핵·반핵 시민단체가 길동무를 한 이번 행사는 지난 1일 삼척에서 첫걸음을 뗀 뒤 열흘 동안 영덕, 영광, 서울, 부안 등을 돌며 “탈핵, 할매가 간다”는 이름의 순회콘써트 형식으로 치러졌다.
미토 기요코는 일본 열도에 반핵운동의 씨앗을 처음 뿌린 미토 이와오 교수의 부인이다. 미토교수는 일본의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온갖 협박에 시달리다 쌍둥이 두 아들과 함께 알프스 등반길에서 의문사를 당했다.
가족을 모두 잃은 슬픔에 젖어 배낭 하나 메고 외국을 떠돌던 기요코는 2002년 대만에서 우연히 ‘핵발전소 필요 없다. 시모노세키 모임’의 대표 카즈요를 만난다. 카즈요는 “마침 한국 부안이라는 곳에서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을 한다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부안의 투쟁현장에서 감동을 받은 기요코는 노후를 위해 모아두었던 100만엔을 비밀에 붙여달라는 조건으로 쾌척해 부안에서는 ‘천만원 할머니’로 알려지기도 했다.
기요코는 그 뒤 후쿠이현 오오이 핵발전소 영구정지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고, 현재 아동탈피폭재판모임 공동대표와 다카하마 핵발전소 가처분 소송 부대표를 맡고 있다.

   
 
사와무라 카즈요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은행에 근무하던 시절 ‘부인공론’이라는 여성지 독자모임을 통해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른 살에 첫딸을 낳은 뒤 이 세상을 내 아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탈핵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뒤 40년 동안 건설 예정이던 핵발전소 세 개를 모두 막아내는 승리를 일궈냈다. 1995년 시모노세키와 영광에서 한일탈핵 교류를 시작한 이래, 반핵활동가 일본초청 등 핵발전소 현지와 핵폐기장 투쟁현장 지원·교류 등을 위해 모두 30회 가량 방한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에도 세 번이나 참여 했으며, 최근에는 삼척, 영덕과도 교류하며 탈핵운동을 응원하고 있다.
현재 ‘핵발전소 필요 없다! 시모노세키 모임’의 대표로 있으며, 체르노빌 아이들 구호활동에도 적극적인 손길을 뻗고 있다.

   
▲ 부안군청에서 탈핵 전단지를 홍보물을 들어 보이는 할매들
5일 정오, 부안에 도착한 할매들은 원불교 김인경 교무, 김은경 교무 등 마중 나온 인사들과 백합요리로 점심을 마친 뒤, 국민은행 옆에 위치한 부안 핵폐기장 투쟁 기념비를 둘러봤다. 할매들은 이곳을 ‘영웅적인 장소’라고 즉석에서 명명하며 “감격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미토는 “이곳 민주광장에서 투표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노란 반핵 스카프를 목에 둘러줘서 따뜻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도로에 중앙분리대가 생긴 건 마음에 안 든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어 도착한 부안군청 광장. 할매들은 “당시엔 이곳이 전경차들로 북적여 아수라장이었는데 이렇게 공원처럼 시원하고 평화롭게 바뀌어 참 좋다”고 운을 뗀 뒤 “전경들에게 쫓겨 병원 골목으로 도망갔는데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 주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 부안 핵폐기장 투쟁 기념비 앞에서 김인경 교무와 기념촬영을 할고 있는 할매들. 오른쪽 카즈요, 왼쪽 미토
이어 원불교 부안교당과 부안성당을 잇따라 찾아 핵폐기장 투쟁 당시 함께 어울렸던 부안 주민들과 만나 회포를 풀었다.
이 자리에서 미토는 “당시 약간의 성금을 전달했더니 부안 주민들이 잘 받았다고 답례로 포플라향이 나는 수제 베개를 선물해 줘서 아직도 매일 밤 잘 베고 잔다”고 감사를 표하며 “한 줌도 안 되는 소수 부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사람들도 생각 없이 에너지를 펑펑 쓰고 있는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탈핵운동에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기를 부탁했다.
카즈요도 “나의 조국 일본이 한반도의 불행에 일조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면서 “핵폐기장 투쟁 당시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현재 영덕이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부안이 당시의 경험을 살려 영덕 주민을 지원하는 것은 어떻겠는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어쩌면 정작 무서운 것은 핵이 아니라 이웃의 불행에 대한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할매들의 시선은 이미 반핵과 탈핵을 너머 촘촘한 지역 연대를 통한 살 맛 나는 지구공동체를 향하고 있었다.
 

우병길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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