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지 121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해에는 120년 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있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직접 연구한 학자나 활동가는 아니지만 우리사회의 개혁을 바라고 생태보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재조명에 있어서 아쉬운 점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지면을 빌어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동학농민군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과연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문하고자 합니다.
먼저 1995년 7월 홋카이도대학의 어느 연구실 서가에서 방치된 종이 상자에서 두개골 표면에 ‘동학당 수괴’라는 글씨가 새겨진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일본 연구자와 국내 (사단법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한승헌 이사장, 그리고 원광대학교 박맹수 교수가 협력해 현장조사와 문헌조사를 통해 유골의 주인공이 진도출신의 농민군 지도자 ‘박중진’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1996년 5월 30일 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봉안해 90년 만에 귀국을 했고, 다음 날 전주시 덕진종합회관에서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해봉환진혼제-동학농민혁명 전승 102주년’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읍시 황토현기념관 사당에 안치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일본측 연구자로 참여한 이노우에 가쓰오 홋카이도대학교 교수가 쓴 ‘메이지일본의 식민지 지배-홋카이도에서 조선까지’(2013년 일본어판 발간, 2014년 8월 발간) 91쪽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안치된 것이 아니라 전주역사박물관 지하수장고에 임시로 보관되어 왔다고 합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어떻게 지하수장고에 방치하다시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으며, 당시 봉환위원회를 구성해서 유골 봉환에 앞장섰던 사람들과 각종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념단체들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올해 3월에는 감사원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전주시와 문화재청이 유골을 화장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전남 진도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훼손한다.’며 문화재청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문화재 지정이 어렵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이후 전주시가 동학농민혁명 역사공원 조성을 조성해 안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유골을 화장해서도 안 되며 전주에 안치할 것이 아니라 진도로 보내 진도에 새롭게 ‘동학농민군 추모관’을 만들어 진도에서 돌아가신 다른 농민군과 함께 봉안하고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북도내 몇몇 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폭구민, 보국안민, 척양척왜’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일어난 혁명입니다. 전라북도내로 국한시키려는 활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 돌아가신 농민군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모른척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정읍시 옹동면 비봉산 자락에서 발견된 1m 남짓 되는 크기의 화강함 비석에 ‘장군천안전공지묘(將軍天安全公之墓)’라 새겨진 것을 보면 전봉준 장군의 무덤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대해 책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조광환 지음,  2014년 2쇄 발행)의 318쪽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해발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에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와 관련자들이 정부에 촉구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와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와 관련자들은 지금이라도 아전인수식의 활동과 기득권세력으로 전락하지 말고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올곧게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전주화약일로 하자는 주장만 하는 것은 기본적인 활동은 도외시 한 채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와 발언권을 높이는 데만 관심을 갖는 행위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제정신을 찾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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