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의 마법이 가능한 이유… “좋은 사람끼리 어울려 사니까”
“두려워 말고 직접 해보는 것이 지식이라고 봐요. 모르는 것도 알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전문가와 다를 바 없죠.”
손재주 좋은 사람을 흔히 ‘맥가이버’라 부른다. 주머니 속 작은 칼 하나로 주위의 평범한 물건에 자신의 과학지식을 응용, 악당들로부터 위기를 모면하는 주인공 맥가이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탓에 멀쩡한 라디오 한 번씩 뜯어봄직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서면 장신리에 맥가이버가 살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켜켜이 쌓인 전선과 부품 속에서 퀭한 눈빛으로 수리품을 흡족하게 쳐다보는 누군가의 얼굴을 상상하며 불등마을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전파상을 하시나. 전직 애프터서비스 수리기사였나. 마을회관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커다란 망에 빨간 고추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회관을 쌩 지나친다. 직감으로 따라갔다. 이상훈 씨(44세)집 마당이 나온다. 마당 바로 앞으로 건설용 덤프트럭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무수히 많은 돌덩어리들을 바닥에 쏟아내고 있었다. 불등마을은 새만금 공사의 중앙이다.  
“맥가이버요? 하하! 전 농민이고요, 작목반에서 그냥 소소한 일을 해요.” 소소한 일? “뭐, 직접 창고를 짓고요, 열탕처리기를 만들고, 파이프를 용접하고, 모판 트레이를 짜 맞추고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지만 스케일이 제법 크다. 현재는 쌀과 우리밀을 재배하는 하서미래영농법인 안에 있는 비닐하우스 배전판을 설치 중이다. ‘나락 종자’싹을 틔우려면 적당하게 온도가 맞아야 하는데, 조합으로 들어오는 전기용량은 넉넉한 반면 전기가 통하는 배선들이 낡아 교체 중이다. 전기선이 얇아지면 전력이 풍부해도 배분이 안 되고 누전으로 인해 시설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배전판 내부를 몽땅 갈아치우려면 대략 60~80만원이 필요해요. 고장난 부품을 직접 갈고 설치하면 8만원 밖에 안 들죠.”
20대 중반부터 건축에 관심이 생겼다. 경남 진주에서 새로 건물을 올리는 공장의 시스템 창호를 만들면서 손재주가 늘었다. 용접도 배웠다. 기본적인 장비와 연장만으로 뚝딱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건축과 관련한 정식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의 경험 덕분에 건축사업자 허가증을 가지게 됐다. 이른바 ‘현장파’ 출신인 셈이다. 쌀겨가루를 살짝 뒤집어 쓴 김종철 사무장도 한 마디 거든다. “저희 회원이 대략 40여명 정도 되는데 혼자서 창고를 짓고, 자재를 활용해 용접하고. 사소한 일까지 손재주가 뛰어나요. 사업을 해도 재능이 있겠어요.” 
시골은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힘없는 동네 어르신들이 집 내외부에 곤란한 일이 생겨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농사가 한가해진 8월이라 전구 갈아주는 일부터 땅 속에서 터진 배관을 교체하는 일까지 상훈씨는 마다않고 동네를 누빈다. 마을은 새만금공사 때문에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는 탓에 주민들이 외지로 떠나버려 조금씩 수척해지는 모양새다.  
“곰소에서 횟집을 운영했어요. 회도 직접 다듬고. 장사가 정말 잘 됐어요. 핵폐기장 사태가 벌어지면서 문을 닫아야만 했어요. 전경들이 부안뿐만 아니라 줄포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버스를 막아버렸잖아요. 3~4년 고전을 하다 결국 문을 닫게 됐어요. 그때부터 농사를 짓게 된 거죠.” 
사업이 실패해 사는 것에 지치고 보대낄 만도 할 텐데 상훈씨는 농사가 좋단다. 그나마 마음 편한 일이 농사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노동을 통해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소비하고, 나머지 시간이 주어지면 스킨스쿠버로 활약. 인명구조원 자격증을 가진 덕분에 부안해양구조단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팔방미인이 따로 없는 셈이다.
“좋은 사람끼리 서로 어울려 사는 것, 그게 좋더라고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힘든 농사도, 상훈씨가 보여주는 맨손의 마법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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