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재직휴가 허가권을 누가 갖느냐...“논란”
원안->수정->집행부 이의제기->재수정->가결
군민감사관도 군수가 위촉...요식행위 전락 우려
 
 

부안군의회가 다시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했다.

부안군의회 자치행정위원회(위원장 문찬기)는 지난 13일 ‘부안군 지방공무원 복무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해 장은아 의원의 수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으나, 사흘 뒤인 16일 집행부의 이의 제기를 받아 들여 다시 원안으로 번안동의해 통과시켰다.

박천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는 장기재직공무원에 대해 근무년수별로 장기재직휴가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10~20년 재직 공무원은 5일, 20~30년 재직 공무원은 10일, 30년 이상 재직 공무원은 15일의 장기휴가를 갈 수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이 조례 제23조⑤항2호로 장기휴가의 허가권을 소속부서의 장이 갖느냐, 아니면 총괄복무담당부서의 장이 갖느냐 하는 문제였다. 총괄복무담당부서는 현재의 자치행정과장을 일컫는다.

당초 원안은 총괄복무담당부서의 장이 허가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장은아 의원이 “그렇게 하면 공무원들이 눈치를 보며 휴가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며 소속부서의 장이 허가하는 것으로 수정 제안함으로서 논란이 촉발됐다.

이에 대해 김영섭 자치행정과장은 “재난이 발생하거나 할 경우 (휴가를) 일괄적으로 통제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서 “이런 것은 집행부에 맡겨야지 허가 부서장까지 (의회가) 찍어서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의원들 대부분은 “2~30년씩 재직한 공무원이 재난상황에서 휴가신청을 할 정도로 분별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치행정과에서 휴가권까지 틀어쥐고 있으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휴가 신청을 안 한 것만도 못하다. 만약의 사태 시에는 비상복무규정이 있으니 이를 준용하면 된다”며 장 의원의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자치행정위는 불과 사흘 만에 긴급하게 회의를 다시 소집하고, “부서의 장에게 허가를 득하도록 한 사항이 집행기관으로부터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 요청이 있었다”는 박병래 의원의 번안동의를 받아들여 원안 그대로 가결했다.

당초 소속부서의 장에게 허가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의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이 얼굴을 쓸어내리거나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싸는 등 괴로운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장기휴가 허가권을 어느 부서에서 갖느냐 하는 문제는 공무원 통제와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소속부서의 장이 허가권을 가질 경우 휴가 신청이 들어오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허가를 하겠지만, 자치행정과가 갖게 되면 단체장이 과장을 통해 허가권을 행사하면서 공무원 길들이기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수정안이 통과된 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자치행정과장이 허가권을 갖겠다는 것은 곧 ‘갑질’을 하겠다는 것”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회는 불과 사흘 만에 손바닥 뒤집듯 소신을 철회하고 집행부의 이의 제기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무기력을 넘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또한 수정안 논의 과정에서 김영섭 자치행정과장이 “군수의 권한을 실과소장이 행사하면 안 되듯이 군수는 군수대로 부군수는 부군수대로 권한이 있는데, 이번 수정안은 군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의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과장의 말대로 군수의 권한이 따로 있고 의회의 권한이 따로 있는데, 고위 공직자가 이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의회의 입법 권능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과장은 또 통제가 필요한 이유로 “교육도 가는 사람만 가고 배낭여행도 가는 사람만 간다”며 교육이나 배낭여행을 떠난 공무원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 의회 주변에서 총괄복무담당부서장의 처신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군민감사관제도 용두사미에 그칠 우려가 높아졌다.

자치행정위는 13일 부안군이 제출한 ‘부안군 군민감사관 구성 및 운영 조례 제정(안)’을 몇 군데 자구 수정만 거친 채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날 논란이 된 부분은 이 조례의 제3조②항 “군민감사관은 부안군수가 위촉한다”라는 조항으로, 첫 질의에 나선 장은아 의원이 “군민감사관을 부안군수가 위촉하면 제도 자체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박병래 의원은 “감사관 전원을 군수가 위촉하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으니 의회 추천 감사관 수를 명시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세웅 의원도 “군민감사관이 뚜렷한 소신이나 정책 개혁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들러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며 “인적 구성이나 운영에 대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현주 기획감사실장은 “군민감사관제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전북도의 청렴도 평가에서 가점을 받는다”며 제도의 도입취지를 설명하면서 “시행규칙을 제정할 때 의원 추천 감사관 수를 비롯해 전문가 집단의 추천 등 선정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와는 별도로 홍춘기 의원은 “군민감사관제는 자칫하면 공무원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제3조②항 “(군민감사관은) 부패척결에 대한 사명감·정의감 및 고발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는 조문 가운데 “고발정신 부분은 감사관의 (역할과) 맞지 않다”며 삭제를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결국 자치행정위는 10여 분간 정회를 한 뒤 의원 간 의견조율을 거쳐 ‘고발정신’을 삭제한 수정안을 발의하는 한편, 집행부가 시행규칙을 만들 때 의회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원안을 통과시켰다.

의회 주변에서는 이에 대해 “군민감사관제도는 주민자치의 역량을 가늠할 핵심적인 장치인데 군수가 일방적으로 위촉하는 것은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면서 “지금이라도 의회가 감사관 위촉 방식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시행규칙이 아닌 조례에 명문화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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