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강도를 공식으로 나타내면 R=i×a다. 여기서 R은 루머의 강도다. i는 정보의 중요성이다. a는 불확실성이다. 즉 전달하는 내용이 중요하면 할수록,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루머는 그 강도가 커진다. 심리학자 고든 앨포트와 레오 포스트만이 1950년대 개발한 공식이다. EBS의 <지식채널e>프로그램의 ‘루머의 공식’편에서 본 내용이다.(2010년 5월 10일자)
오래전 티비에서 봤던 내용이 뇌리에 남아 요즘도 종종 인터넷 검색으로 다시 찾아보곤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식이 아닌가 싶어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학자들의 연구를 이용해 루머를 이렇게 정의한다. ‘루머는 어떤 집단이 모호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설명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이다.(심리학자 니콜라스 디폰조, 프리샨트 보르디아) ‘공식적인 신뢰를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추론, 즉 루머를 통해 이를 보상하고자 한다.’(사회학자 타모츠 시부타니)
이 정의와 공식에 맞춰서 최근의 사건을 하나 살펴보자. 지난 5월20일 국내 최초로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확진자는 물론 그와 접촉한 환자와 의료진을 격리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후로 확진자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5월 30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엄벌에 처하겠다고 발표했다. 6월 4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의해 35명의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 6곳의 명단이 발표됐다. 같은 날 밤 서울시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35번째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 지역 한 병원 의사가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와 병원 심포지엄 등 행사에 수차례 참석, 공중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6월 5일이 되어서야 보건복지부는 최초의 확진자가 1차 유행을 발생시킨 평택성모병원의 이름을 발표했다. 6월 7일에서야 확진환자가 경유한 24곳의 의료기관 명단이 발표됐다. 이즈음에는 이미 확진자만 해도 87명으로 늘어나있는 상태였다. 그 후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7월 1일 현재 누적 확진자 수는 183명이고, 누적 격리자 수는 1만5천여명에 달한다.
감염학적인 문제나 보건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는 빼고, 정부가 엄벌에 처하겠다던 유언비어만 이야기해보자. 걱정하지 말라는 정부의 발표와는 다르게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확진자 숫자를 보며 국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는 전염병의 특성상 전달하는 정보의 중요성 i가 매우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는 지역사회 감염은 없다, 모두 병원을 통해서만 감염됐다면서 정작 병원의 명단을 보름이 지나서야 발표했다.
이미 불확실성 a는 극에 달했다. 당연히 루머의 강도 R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모호함을 해결해기 위해 대중은 루머를 통해 추정한다. 먼저 병원의 명단을 추정한다. 공식발표가 없으니 애꿎은 병원들이 섞여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음은 명단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를 추정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나돈다. 감염력에 대한 발표에도 의심이 싹튼다. 이렇게 많은 환자가 병원에서만 발생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가고, 병원을 피한다. 관광지는 한산하고, 시장은 일찍 문을 닫는다. 정부가 그토록 우려하던 경제적 악영향이 급속도로 커진다.
앞서 말했던 프로그램에서는 루머의 확산 강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루머의 전파 정도는 신뢰에 반비례한다. 낮은 신뢰의 사회는 항상 루머를 만들어내고 루머를 찾는 활동을 벌이게 만든다.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 장후석 연구위원이 발표한 「OECD 비교를 통해 본 한국 사회자본의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자본(신뢰와 참여, 배려를 통해 공·사적 공동체 안팎으로 협력을 촉진시키는 유무형의 자본)은 OECD 32개국 중 29위다. 특히 공적시스템, 공적배려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하게 루머가 활동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시 복기해보자.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확진자가 나온 이후 그가 다녀간 경로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제공한다. 그와 함께 메르스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 정부의 대처나 메르스에 대한 기존 지식이 미흡할 수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진행 중인 상황은 정례적으로 브리핑하고 정보를 공개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나 기관의 미진함이 발생하면 즉각 사과하고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설명한 후 보완책을 내놓는다. 만약에 공익을 위해 밝힐 수 없는 정보가 있다면 그 이유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한다.
적어놓고 보니 교과서적인 대응방법이다. 보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이 이런 식으로 처리돼야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해서, 4대강의 추진과정과 그 예상효과에 대해서, 천안함의 침몰과 그 원인에 대해서, 세월호의 침몰과 구조과정의 문제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합리적인 의심에 대답하며, 모르거나 불확실한 것은 함께 풀어가자는 열린 자세였다면 그 이슈들이 그처럼 나라를 뒤흔들었을까?
신뢰와 마찬가지로 불신 역시 오랜 시간 누적을 통해 만들어진다. 지금 당장 그것을 극복하려 시작해도 앞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불신은 정권 지지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도 시스템도 개인도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 지옥 같은 괴로움을 잘 알고 있다. 유언비어 단속에 열을 올리는 자신들이 가장 큰 유언비어 유포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그 괴로움은 길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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