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사이로 아침햇살이 들어온다. 6시에 얹혀 있는 시계바늘을 따라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킨다. 습관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두덩이는 부어있고 머리카락은 엉클어져 있다. 서둘러 주방으로 향한다. 식탁위엔 먹다만 사과가 변색된 채 남아 있다. 까다만 마늘부스러기들이 주방 바닥에 널 부러져 있다.
 남편은 어느새 일어나 화장실을 차지했다. 면도기 돌아가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온다.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늦게 나오는 통에 나도 아이들도 곤욕을 치르곤 한다. 매번 화장실을 먼저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늦잠에 아침을 준비하느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화장실에 습관처럼 오래 있는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잔다. 그러니까 아이들 머릿수가 늘어난 후로는 남편의 눈곱을 본지 오래다. 퇴근 후 편히 쉬고 싶은 남편은 나와 딸 셋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피해 늘 골방에 든다.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때문에 남편의 아침 밥상은 그리 풍성하지는 않다.
 평소의 아침 밥상은 누룽지탕과 김치, 그리고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남편은 소박하고 맛있는 식단이라며 능글능글 칭찬까지 한다. 진심으로 믿고 싶지만 나 또한 켕기는 게 있어 희망사항일 뿐이다. 아이들이 태어 날 때마다 반찬 가짓수가 줄어들고 소홀해져도 불평하지 않는 남편. 미안한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음식물 쓰레기까지 들고 출근한다. 자상함이 고맙지만 미안하진 않다. 난 이 시간 이후로 나머지의 전쟁을 감당해야 하니까.
 막내딸이 어김없이 첫 번째로 일어났다. “엄마! 안아죠” 혀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어린양을 하며 잠이 덜 깬 눈으로 윙크까지 한다. 고무장갑을 어렵사리 벗으며 막내를 안아 찐한 뽀뽀를 한다. 나도 딸도 “아~ 맛있다.”라며 씨익 웃는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아이를 내려놓는다. 고무장갑에 손을 넣으며 막내에게 엄마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무릎 나온 바지를 당기며 다시 안아 달라 조른다.
 외출할 때면 가장 오래 준비하는 큰딸은 아직 잠 속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알람이 시끄럽게 울어대지만 소용없다. 둘째 딸이 화장실로 뛰어간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화장실이 조용하다. 궁금한 마음에 화장실을 들여다보았다. 둘째딸이 보이지 않는다. 내친김에 방문을 열어보았다. 이불 밖으로 발이 보인다. 발가락이 아빠를 닮은 둘째는 어느 틈에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가 있다. 여전히 막내는 바지를 붙잡고 안아달라고 한다. 만화영화로 유혹해보지만 어림없다. 하는 수 없이 막내가 좋아하는 계란프라이에 밥을 비벼 식탁에 올려놓는다. 이내 조용해진다. 지금부터는 큰딸과 전쟁을 치뤄야 할 시간. 화를 내지 않으리라, 큰 숨을 내쉬며 큰딸 곁으로 다가 선다.  예고 없이 이불을 걷어서 개어 버린다. 그래도 요지부동, 새우잠이다. 흔들고 간지럼도 태워본다. 음악도 크게 튼다. 겨우 일어나 앉더니 여전히 존다. 어느새 시계바늘이 7시20분을 향해가고 있다.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육두문자가 치민다. 서툰 수저질을 마친 막내는 문지방에 올라서 기댄 채 눈치를 보고 있다. 큰딸과의 한바탕 전쟁에 징얼대며 일어나는 둘째. 그제 서야 아무렇지도 안은 듯 일어선 큰딸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화장실을 향해 간다. 큰딸의 뻔뻔한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고양이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친 아이들이 이 옷 저 옷 고르며 키득거리고 있다. 등교시간이 코앞인데 아침밥은 아예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젠 폭발직전이다. 눈치 빠른 막내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다.
 밥을 강제로 밀어 넣는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손은 쉬이 멈추지 않는다. 우격다짐, 큰딸의 입에도 또 밀어 넣는다. 양이 많았는지 뱉으려한다. 손이 올라간다. 놀라는 눈 때문에 차마 내려놓는다. 다급한 시간을 묶듯 머리카락을 대충 묶고 겉옷은 손에 쥐어준 채 세째딸을 어린이집 차에 올려 보낸다. 둘째딸도 헐레벌떡 뛰어나와 겨우 유치원차를 탄다. 걸어서 등교를 하는 큰딸은 옆집에 사는 같은 학교 언니와 골목으로 사라진다. 남편과 세 딸을 보내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아침. 멀리 능선에 물려 있던 햇살은 어느새 허공에 떠올라 있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코흘리개였던 내 손을 잡고 교실 문을 열던 어머니의 얼굴이 햇덩이에 겹쳐진다. 바람결인 듯 그리움이, 허전함이, 물밀어 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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