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생각한 결론이든, 아니든 습관처럼 하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의 조각들이 뭉친 후, 세월로 자리매김 되었을 때, 현업의 은퇴를 앞두고 구체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고향으로, 혹은 전원생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지역으로의 귀농·귀촌을 생각하고 실천한다.
귀농의 경우, 농업경영을 전제하되, 귀촌은 전원적 삶을 현실화하는 것일 게다. 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처음부터 귀농을 전제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활동기반을 장치할 필요를 절감하고, 그 활동이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흑염소 사육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축산에 경험이 전무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약 2년간 준비과정을 밟았다.
귀농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소중한 만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계가가 될 수 있는 반면, 새로운 간극을 형성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주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인상을 준비하여야 한다. 인위적으로 제조된 인상이 아닌 삶의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철학과 비젼을 나눌 준비이다. 완벽함보다는 소프트한 나를,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의 융합에 기반할 때, 삶의 2막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질 것을 생각한다.
서로 다른 무리의 가축을 합사하는 경우, 상당기간 동안 서열다툼 싸움을 목격한다. 서열을 중시하는 집단의 단편적 현상이다. 일단 서열이 정해지면 패배자는 리더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받는다. 어떤 의미에서 패배는 곧 복종의 서약이다. 매우 단순하고 간결한 동물세계이다.
이와 구별되는 인간의 삶터는 어떠한가. 사람은 종속을 거부한다. 자기만의 독특함을 소유한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부여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무시할 수 없으며, 상대의 사회적 지위나 처지에 불문하고 모두의 개인적 소질 또는 개성을 충분히 인정할 때 비로소 자신의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귀농 후, 마을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관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가기간을 거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어떨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성실하고 소통이 가능한 사람,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으로 결론지어지면 마을사람들을 포함한 주변인들로부터 농촌의 훈훈한 인심을 선물로 받는다. 결코 이방인이 아닌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 인정된다는 의미이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최우선으로 겪어야하는 과정이며, 그 어떤 과정보다 소중하고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나이 들면 고향가서 살아야지”라고 어쩌면 막연함이 포함된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입장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나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물씬 담긴 고향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다는 의미이지만, 고향사람들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던 이가 나이 들어서, 혹은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고향 인심이 예전같지 않다는 등의 표현이 결코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농촌의 인심은 훈훈하다고 얘기 들었으나, 막상 당하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평가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귀농하기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어떤 지위였는지, 사회적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등은 중요한 의미를 담지 못한다. 오히려 이를 강조하는 경우, 새롭게 형성되는 주변인들과의 간극을 벌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경제적 활동의 산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예컨데 재산의 정도 또는 보유수준이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일 수 없고, 주변인들과의 관계성, 자신의 손해를 피하지 아니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사람,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함께 행복해지는 사람이야 말로 소프트하게 접근하고 관계될 수 있는 존재감으로 귀결될 것을 확신한다.
함께 가는 세상, 각자의 삶을 더불어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귀농·귀촌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소재임을 강조하고 싶다.
새로운 삶의 터에서 공감하고 소통하여 행복을 발연하는 소중한 구성원으로 융합되기를 자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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