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표/주산면


초등학교 6학년 배메산으로 봄 소풍갔을 때 사진인가 보다. 오염되지 않은 착한 얼굴의 아이들 몇이 오종종 앉고 서서 찍은, 들여다보니 학교 소풍을 간 게 아니라 가족 나들이를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사진이다.

시골에서의 학교 행사는 곧 집안 행사나 진배없다. 씨족이 작은 부락을 이루어 살다 보니 돌아보면 모두가 형제요, 자매다. 정작 친구 문병근이 녀석은 한쪽에 비켜서 있고 갓 1학년이었던 조카 도윤이와 옆으로 나란히 3학년인 손녀 숙영이, 조카 현정이, 동생 보연이가 서 있다. 앞줄에 앙증맞게 앉은 손녀 수정이와 동생 유진이가 딴 데를 쳐다보고 있다.

그때는 소풍 때마다 보물 찾기, 노래 장기자랑 등을 한 것 같은데 지금 아이들도 그렇게들 하는지 모르겠다. 또래가 되다 보니 우리는 무엇이든 경쟁을 하며 자랐다. 공부도 운동도 놀이도….

나의 저학년 때 별명은 ‘유람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거나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녀 붙여졌던가 보다. 옆집 아저씨가 담임이 된 4학년 무렵 그 버릇은 잡혔고, 제대로 정신을 차리게(?) 된 건 5학년 때인 것 같다.

큰집에서 자취를 하시던 처녀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고, 어느 날 큰집 형수를 통해 내 얘기를 전해 듣고 벼르신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해온 것을 빌미삼아 대나무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맺힐 만큼 심한 매질을 하셨다. 피아노를 치시는 선생님께 배워 사진 속 아이들 모두가 피아노를 쳤지만, 나는 좋아하는 그 선생님 주위를 겉돌기만 했다.

따로 열심히 아버지가 보시는 교사용 교재(절대로 참고서를 안 사주시는 아버지는 그때 교직에 계셨다)로 공부를 하여 조금씩 성적을 올리게 되었고, 선생님의 관심으로 그나마 공부에 취미를 붙여 상급학교 진학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고향이 좋다. 어젠 모를 심었다. 우렁이를 방사하고 물꼬를 살피며 난 그때 그 흙의 진한 냄새를 지켜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몸에 밴 고향의 흙냄새. 그리고 흙과 함께 나를 키워 주신 선생님들. 여전히 서울에서 교단을 지키고 계신 고영선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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