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과 한바탕 싸움질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어머니는 ‘싸우지 마라. 맞아도 지고, 이겨도 지는 것인데... 쯧쯧’ 혀를 차 곤 하셨다. 한창 피 끓던 시절에 그 말씀이 귀에 들어 왔을 리 만무하다.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가 자식들에게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흘려보낸 말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이리라.
순박한 시골 사람을 일러 ‘법 없이도 살 사람, 적 안둘 사람’이라고 한다. 적 없이 살아온 인생이 칭찬받고, 그 사람의 인격과 삶에 대한 평가의 지표가 된다.
어찌 보면 적(敵)이 생긴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왕따는 낙인이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공격을 당하는데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가 없다. 사실 확인이나 변명은커녕 하소연할 상대조차 찾기 어렵다. 그러니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극단적인 해결책으로 세상에 등을 돌리곤 하는 것이리라.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세상을 온통 적(敵)으로 간주해 버리는 극단의 널뛰기가 악순환 된다.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상실한 작금의 대한민국은 멀쩡한 사람도 어느 한 순간에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리는 기막힌 일이 비일비재하다.
낙인(烙印)이란 불에 달구어 찍는 쇠도장을 뜻한다. 끔찍한 고문이 연상되는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가? 적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당사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일이 무책임하게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권과 경제계 일수록 아주 가관도 아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정상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무수한 침략을 겪은 민족이다.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국경을 밀고 쳐들어 온 외세만이 우리 민족의 적이었겠는가? 같은 민족끼리 분단되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호남, 영남으로 지방이 나뉘어 있다. 도시와 농촌이 제각각으로 갈려있다. 작은 농촌마을에조차 담벼락을 사이에 둔 이웃지간에 얼굴도 마주 하지 않는 일이 있다.
평화의 시기동안은 우리에게 외부의 적은 없었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싸워왔다. 어쩌면 우리에게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지도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빌리자면, ‘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신들을 식별하기 위해, 자신들의 그룹에 속하지 않은 자라면 누구든지 적으로 겨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을, 그 적을 만들어 내서 악마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불편한 진실이다. 세상에는 이런 목적으로 적을 만들어내는 일이 많으니까.
사회주의가 해체되고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악의 축’을 만들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결국에는 미국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적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지 않는가? 어찌 보면 자국의 정체성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을 만들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인 셈이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작별 인사’를 통보 받은 적이 있다. 일방적이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서, 최소한의 사실 규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몇 번의 답장을 썼다가는 결국에는 지워버렸다. 내가 싫다는 건데 굳이 해명이 필요하겠냐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생겨날 것이고, 그때마다 속앓이를 겪을 터이다.
적이 생긴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닐 수도,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책임을 져야 할 위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다. 선배가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벌여 나가기보다는, 그동안 벌여 놓은 일을 정리하여 책임질 것과 후배에게 물려주어야 할 일을 구분하여 마무리하는’ 것이리라. 각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이해에 따라 평가할 것이니 때론 적이 생겼다는 것이 꼭 나쁜 의미로만 여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일갈하였다. ‘적이 생겼다는 것이, 인생이 잘못되어 간다는 징조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몇 가지 신념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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