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무를 조금 구해 볼 생각으로 그를 서울에서 보름가량 기다렸다. 유럽을 방문하고 일본을 거쳐 오늘 서울에 입성하겠다는 그는 오지 않았다.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너무 오랜 시간 빈집에 정막을 심었다. 나무는 항시 주인이 따로 있었다. 만나지 못함은 인연이 아닌 것이다. 목수와 나무는 서로가 애틋할 때 선율이 되곤 했다.
그들은 말한다. "대체 바이올린은 어떤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그랬다. 바이올린은 이탈리아가 태생국이다보니 이탈리아 주변국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스위스 알프스산 나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발칸반도산 나무를 좋아하는 이도 있다. 주로 고산 지역에서 추위를 견뎌낸 강한 나무를 제작자들은 원했다.
나무의 쓰임새는 이랬다. 앞판의 경우 침엽수인 전나무나 가문비나무를 사용했고 옆판과 뒷판 그리고 헤드의 경우는 활엽수인 단풍나무를 사용했다. 앞, 뒷판의 나무질량 값은 소리에 밀접한 관계 속에 엮여 있었다. 뒷판나무는 강질인데 비해 앞판나무는 연질이다. 강, 약이 조화를 이룰 때 선율은 달콤했다.
항시 그랬듯 나무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벌목일로부터 십 년 이상 자연 건조시킨 나무가 좋다고 나의 마에스트로(스승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일까. 많은 제작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고 다녔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만난다는 것은 악기 깎는 쟁이에겐 큰 행운인 것이다. 그랬다. 보름을 기다려야할 이유였던 것이다.
기다림이 지쳐갈 무렵 나는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부안행 표 한 장 주세요."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의자에 앉아 부안행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허전끼로 맴돌았다. 기다림은 간혹 우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아이고 박선생님 제가 어제 늦게 귀국하여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차적응 때문인지 늦잠까지 자고 말았습니다." 그의 전화다. 이제서야 연락을 드린다며 서초동 당신의 사무실에서 보기를 원했다. 차표를 물리고 나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그의 사무실은 나무로 가득 쌓여 있었다. 달달한 나무향내가 코끝을 눌러댔다. "아이고, 선생님, 이 얼마만입니까?" 그는 반갑게 나를 반겼다. 유럽과 일본을 한 달에 보름 정도 가서 생활한다는 그의 얼굴엔 피곤끼가 역력해 보였다. 팔리지 않는 악기를 아직도 만드냐며 그는 나를 보며 애처로운 듯 쓴웃음을 삼켜댔다. "이제 악기제작 그만 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사주지도 않는 악기 왜 만드시는 겁니까?" 한숨을 뱉어대는 그의 입술이 조심스레 떨리며 퍼졌다. "나무가 없으면 나도 이제 그만 깎으려합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며 첼로 나무를 보고 싶다 말했다.
발칸반도산 나무를 쑥 뽑아 나에게 보인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기간만 7-8년 정도 되었습니다. 건조 기간까지 합친다면 한 십년이상 된 나무입니다." 하며 그는 나에게 나무를 건내 주었다. 통통 두둘기는 손가락마디를 타고 청명함이 귓전에 울려 퍼졌다. "요녀석 소리 봐라! "공명이 섹시한 것이 내 마음을 끌어당겨댔다. "요 녀석이 마음이 마음에 듭니다. "항시 그렇듯 처음 마음에 든 나무는 그동안의 경험상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나무야! 너를 만나기 위해 보름을 기다렸다." 이렇듯 나무는 항시 주인이 따로 있었다. 몸이 피곤하다. 내려와 버렸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을 나는 오늘 만난 것이다. 명기를 만들어달라는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선율을 새긴다. 오늘에서야 부안집에 나무가 도착했다. 다시 어루만져보는 나무결 사이로 행복감이 흐르고 스몄다. 나는 천상 소리에 미친 목수놈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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