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민간단체와 시의회, 일제히 반대해
고창 “대승적차원에서 따르겠다”...입장 변화
부안도 반대...백산봉기 재조명 요구 대두돼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전주화약일이 잠정 결정되자 부안과 정읍은 일제히 반대하는 반면, 고창은 조건부 묵인 등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체부 산하 특수법인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은 지난 3일 대전에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추진활동 보고회’를 열고 전주화약일인 6월11일(음력 5월8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전주화약일은 초토사 홍계훈이 전봉준을 만나 농민군의 '폐정개혁안'을 임금께 상신하고 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하면 신변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한 날이다.
기념재단의 이같은 결정에 당장 발끈하고 나선 곳은 정읍시였다. 지난 9일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비롯한 관련 3개 단체는 정읍시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보고회가 혁명의 역사를 심각히 왜곡했고 그 과정 또한 정당치 못했다며 전주화약일의 기념일 제정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주화약으로 인해 농민군은 서울로의 진격계획을 접고 전주성에서 철수했으며, 오히려 관군이 철수하는 농민군을 추살(追殺)하는 계기가 되는 등 혁명의 오점으로 남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정읍시의회(의장 우천규) 또한 지난 13일 열린 본회의에서 '전주화약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제정 추진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기념재단이 전주화약일을 기념일로 표결 끝에 잠정결정했다는 소식은 이를 지켜본 유족과 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고자 하는 온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안겨주고 말았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고창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년 전 (고창이 주장하는) 무장기포일이 동학기념일로 제정되기 직전까지 갔으나 정읍의 발목잡기로 좌절된 적이 있다”면서 “지금도 기념일로 가장 적합한 날은 무장기포일이라는 생각엔 변함없지만, 신속한 기념일 제정을 바라는 유족들의 염원과 동학농민혁명의 발전적 재조명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적법한 절차와 적법한 상황이라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만 놓고 보면 지난 10여 년간 동학기념일 제정을 둘러싸고 정읍시와 사사건건 대립해 온 고창이 한 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정읍이 고집하는 황토현전승일을 기념일로 양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결사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쪽 분위기가 이러한 가운데 부안은 반대 여론이 높았다. 김원철 동학농민혁명백산봉기기념사업회장은 “전주화약으로 인해 53개 군현에 집강소가 설치됐다고는 하지만 동학혁명사 전체로 볼 때 역사적 가치나 의미가 낮다. 기념재단이 엉뚱한 날을 잡았다”면서 “오는 4월에 열리는 기념재단 이사회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안군 관계자도 “공식입장은 반대”라면서 전주화약일 대신 다른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기념일 제정은 민간단체가 나서야 하는 만큼 인근 지역 단체들과 의논해 우선 전주화약일이 기념일로 제정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읍시 관계자도 “기념재단의 보고대회는 절차상으로도 하자가 많다. 기념재단이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면서 “전주화약일을 일단 무산시킨 뒤 민간단체들이 합의해 객관적인 학술대회를 통해 원점에서부터 재조명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념재단의 무리한 기념일 제정 과정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부안, 정읍, 고창 등 3개 시군의 입장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주산면에 거주하는 ㅇ씨는 “지난 10년 동안 기념일 제정이 지리멸렬한 것은 다 정읍과 고창의 감정싸움 때문 아닌가”라면서 “이참에 정읍과 고창을 중재하는 의미에서라도 백산봉기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서 기념일로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동학농민혁명은 한 지역의 작은 사건이 아니라, 프랑스시민혁명과 함께 세계 4대 근대시민혁명으로 꼽힐 정도로 조선 각지의 농민이 궐기한 세계최대규모의 농민혁명이다. 따라서 특정지역에 유리한 날짜를 고집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일대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백산봉기를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는 것이 다수 군민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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