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테니스 스타인 슈테피 그라프는 80년대 중반부터 99년 은퇴할 때까지 테니스에 관련된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테니스계의 여제라 불렸다. 그녀가 거둔 107번의 우승 중 22번이 그랜드슬램대회이며 그녀가 세운 연속 세계랭킹 1위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단식 우승상금이 27억 원이니 그녀가 통산 벌어들인 상금도 엄청났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선수 말년에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페터 그라프가 주도한 탈세 사건이었다. 4년 동안 약 200억 원의 상금을 소득신고에서 고의로 누락시켜 이에 따른 세금 약 100억 원 정도를 탈세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내용이었다. 코치이자 매니저이며 재산관리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결국 3년 9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스테피 그라프는 지금으로 비유하면 김연아처럼 전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던 스포츠스타였지만 탈세 담합 의혹으로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복지선진국인 북유럽도 아닌 중부담 중복지의 대표나라 독일에서의 소득에 대한 과세규모에 놀라고 탈세범에 대해 국민들이 가하는 도덕적 비난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누리고 있는 나라에서 탈세란 그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가장 악질적이고 파렴치한 반사회적인 범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기가 죽을 때까지 매일 2억4천6백만 원씩 100년을 써야 약 9조원이 된다. 9조원이란 돈은 20년 전 61억 원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아 세금내고 남은 44억의 종자돈으로 각종 편법과 불법을 통해 40대의 삼성전자 이재용부회장이 마술처럼 불린 현재까지의 그의 재산이다. 혹자는 ‘386배가 튀었다’, 어떤 이는 ‘733배가 맞다’고 말한다. 제일모직의 상장으로 삼성의 삼남매는 81억을 투자하여 5조 9천억의 주식을 챙겼다. 아무튼……. 그들의 상속과 증여는 여전히 탈법과 편법을 줄타기 하면서 진행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은 13년 동안 재판과정을 통해 일부 유죄가 확정되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4개월 후에 평창올림픽 유치에 힘써 달라며 특별 사면해 주었다. 이런 부정한 방법의 부의 세습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987년 당시 약 7조에 달하는 삼성그룹을 공식적으로는 237억을 상속·증여 받아 176억 원의 상속세를 납부하고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정상적인 증여나 상속은 30억 원 이상이면 세율이 50%라고 하니 그들의 말처럼 ‘법과 제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절세’가 기막힐 따름이다. 다른 재벌들의 부의 대물림도 삼성의 방법을 따라가고 이를 막을 제도는 그 뒤를 수습하며 따라가는 형국이다.

삼성X파일에서 드러난 검찰장악시도, 관료와 지식인 포섭, 언론에 대한 영향력 행사, 무리한 무노조 경영에 따른 인권유린, 열악한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불인정, 불법‧편법 증여에 따른 탈세, 태안기름 유출 후 보여준 환경에 대한 태도, 불산 유출사고 후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생명보다 기업이미지를 중시하는 모습, 의료민영화와 맞물려 국민건강을 수익모델로 생각하는 일 같은 삼성이 쏟아내고 있는 많은 사회적 문제점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사회는 ‘정권이 바뀌어도, 시간이 흘러도 삼성은 변하지 않는다. 삼성 같은 이길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은 그들이 원하면 그 방식이 설사 불법이라 할지라도 처벌받지 않고 정당화 된다’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고 결국 “부정한 상속을 부끄러워하는 사회” 대신 “부러워하는 사회”로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하고 싶은 기업1위가 삼성전자인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전라북도 의회에서 한 의원이 삼성드림클래스 사업을 거부한 김승환 교육감에게 “교육감 때문에 전북지역 학생들이 손해를 입었다”며 교육감의 소신을 묻는 책임추궁성 질문을 하였다. 이에 김 교육감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국가경제와 국민경제에 기여할 진정한 의사가 있다면 성실한 납세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호로 기여를 해야 한다. 마치 국민들에게, 아이들에게 선심 쓰듯이 하는 자체가 탐탁지 않다. 삼성에서 전북교육청에 명확하게 ‘이것은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십시오’ 하면 받겠지만, 삼성의 기업이미지를 높여나가고 어릴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삼성이미지를 각인시킬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옳고 그름과 양심의 문제에서는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
퇴계이황이 임종 직전에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당부한 말이다. 이황은 이렇게 평생을 매화를 사랑하며 곁에 두었다고 한다. 집 앞 마당에 있는 매실나무에 꽃망울이 금세라도 터질 듯하다. 눈 많은 푸른숲마을(청림)에서도 잘 견디어준, 그리고 곧 향기와 푸르름과 열매로 모든 것을 내어줄 매화를 바라보며 “매화는 일생을 추운 곳에 살아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말을 되뇌며 선인들이 매화를 그토록 사랑한 연유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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