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에 도깨비 이야기 하나 하려고 한다. 도깨비 하면 몇 가지 연상되는 것이 있는데 성격이 변화무쌍한 사람을 지칭하거나 아니면 새벽 장에 잠깐 섰다 사라지는 도깨비 시장을 연상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부지깽이가 도깨비 되어서 왼쪽 다리를 걸어야 넘어간다는 설화이거나 동화책에 나오는 뿔 달린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를 생각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어렸을 때 두 눈으로 본 틀림없는 도깨비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어렸을 때, 지금부터 한 오십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매년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아버지께서는 형과 나를 데리고 큰 집으로 제사를 모시러 갔었는데 우리 집 밖을 나서면 국민학교 가는 방죽 길 초입에 내 친구 종길이네 다랑 논이 거기에 있었다. 지금은 경지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물 품는 일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물을 품어 올리는 자새라는 농기구가 있었다. 힘 좋은 장정들이 자새위에 올라가 자새의 발판을 돌리면 발판을 통해서 펌핑이 되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농기구였다. 그런 자새는 농사철에만 사용을 했다.
 어느 해 어김없이 섣달 그믐날 저녁 아버지 형 나 이렇게 제사지내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던 중학생이던 형이 갑자기 앞만 보고 달음질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는데 종길이네 논에서 한겨울에 시커먼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장정들이 두런거리며 자새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겨울에 자새질을 하다니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린 내가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서움 보다는 한 겨울 자새질 하는 일이 생경해서 “아버지 저 사람들 왜 물 품어”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는 댓바람에 두루마기로 나를 감싸더니 휘적휘적 앞만 보고 가시는 게 아닌가. 앞서 내달린 형은 그때 그게 도깨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서워서 뛰어갔을 것이고 아버지께서도 도깨비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두루마기 속에 나를 묻어 버리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도깨비를 본 것은 나만 본 것이 아니라 앞서 내달린 형도 보았다는 것이고 두루마기로 나를 감싸 안은 아버지께서도 같이 보셨다는 얘기가 된다.
  밤새 그 사람들이 누구일까, 왜 거기서 여름도 아니고 겨울에 꽁꽁 언 물을 자새질 하고 있었을까, 그 생각에 젖어 이튿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종길이네 논을 유심히 쳐다보아도 어제 저녁 그들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도깨비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사람의 형상을 한 헛깨비가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만 할 뿐이다. 그 뒤로 몇 번인가 우리 동네 아이들이 그 논에서 도깨비를 보았다는 말이 있었지만, 농촌 곳곳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호롱불이 사라지고 세상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저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깨비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먼 훗날 내 아이들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심심파적으로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더니 “아빠 거짓말 하지마” 하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아빠 말을 믿어주지 않는 녀석들이 얄밉기도 했지만, 이만큼 세상을 살아오면서 거울 속에 비친 옛 도깨비를 추억하는 일곱 살 아이는 어디로 가고 반백의 촌로가 서 있는 모습만 남았다.
그래 세월이 도깨비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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